정재학 (185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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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1883년 이남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남 정응원이 태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큰돈을 벌 결심을 한 뒤 명태 장사를 택했다. 옛 주인을 찾아가 1년간 천 냥을 빌려 달라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원산으로 달려간 그는 3년 만에 갚을 돈은 물론 장사 밑천도 두둑이 마련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 <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1 </ref> <ref> 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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