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연 (한의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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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설명|[[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 해외|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된 황도연(黃道淵)과는 다른 사람이다.}}
{{다른 뜻|황도연 (축구 선수)|의학자}}
'''황도연'''(黃道淵, [[1807년]]-[[1885년]])은 [[조선 말기]]의 [[의학자]]이다. 호는 혜암(惠庵)이며 본관은 [[창원 황씨|창원]](昌原)이다. 16살 때인 [[1822년]]([[조선 순조|순조]] 22년) 무렵부터 의학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는 [[서울]] [[무교동]]에서 [[병원]]을 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명의(名醫)로 이름이 높았다. 여러 [[한의학|의학]] [[책|서적]]을 집필함으로써 의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죽은 뒤 아들 황필수가 의방활투와 의종손익의 내용을 합해서 《[[방약합편]]》(方藥合編)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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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종손익]]》(醫宗損益) 12권
* 《[[의방활투]]》(醫方活套) 1권
 
 
[[분류:조선의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