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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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향비파와 당비파.png|섬네일|조선시대『악학궤범』 향부악기도설에 나오는 향비파와 당비파]]
 
'''한국음악'''(韓國音樂)의 기반이 된 음계는 [[한반도]] 및 [[중국]] 동북부 등과 교류하여 고대시대부터 전래되어오는 것과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한 빠른 문화유입에 의한 음악적 반응을 포함하여 [[한민족]](韓民族)의 [[음악]]을 총칭한다.
 
넓은 의미의 '''한국음악'''은 소위 ''국악''으로 불리는 1) 한국음악과 현대에 [[서양음악]]의 기법을 사용하여 창작된 근대한국음악 및 현대의 창작국악을 포함한 2) 한국현대음악, 그리고 현대의 한국대중음악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나 일반적으로 국악은 [[한국음악]]으로한국음악으로 불리며 한국현대음악도 [[한국음악]]에한국음악에 포함된다. 또한 ''한국음악''과 ''한국대중음악''은 구분된다. 한국음악은 지역상 [[동양음악]]의 한 갈래이며 기초 [[인문학]]인 [[음악사학]]의 연구대상이다.
 
== 한국음악과 한국음악사학==
[[한국]]에서는 6.25 사변 이전의 조선왕조에서 관촬하여 계승하도록 장려한 것과 백성들의 자발적 인 농악을 포함하여 전래전통 [[국악]](國樂)이라고정의한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음악사]]를 조망하고 세계음악의 한 조류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명칭의 [[한국음악]]을한국음악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음악]]은한국음악은 [[동양음악]]에 속하며 동시에 [[인문학]]인 [[음악사학]]의 연구대상이다.
 
=== 한국음악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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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
[[한국음악]]은한국음악은 크게 한국음악, 한국현대음악, 한국대중음악으로 구분한다.
 
=== 한국현대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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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현황=====
현재 남아있는 악곡으로 볼 때, 아악은 한 곡, 당악은 두 곡밖에 남아있지 않아 대부분의 악곡이 향악에 속하게 되어 분류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또한 이 분류법에서는 [[민요]], [[판소리]] 등의 민속악과 현대의 [[창작국악]]을 분류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현대에는 이러한 분류법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ref name=autogenerated1>《국악통론》, 서한범, 태림출판사, p.110</ref> 그러나 음계상의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黃=C의 음계를 따르는 곡들을 '당악계 음악', 黃=E♭의 음계를 따르는 곡들을 '향악계 음악'으로 부른다.
 
=====현대의 분류법=====
현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분류법은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음악사학]]계에서 이견도 있다. [[범패]]와 같은 불교음악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가 하면, '민속음악'이라는 말이 원래 '예술 음악(art music)'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산조]]나 [[판소리]]와 같은 예술음악의 분류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장르별로 분류하기도 하고, 종교음악을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또한 연주되는 방법에 따라 기악곡과 성악곡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ref>《국악감상》, 성경린, 삼호뮤직, p.31</ref> 여기서는 일반적인 분류 방법을 따라 정악과 민속악, 창작 국악으로 구분하기로 한다.
======정악======
정악은 궁중음악과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되어 오던 모든 음악을 가리킨다. 세부적으로 분류하자면 의식 음악(제례악)으로 분류되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궁중의 연례악, 민간 상류층에서 향유하던 [[풍류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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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악]]이 유입된 것도 통일 이후이다. [[문무왕]] 4년에 사람을 보내 [[당악]]을 배웠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각종 유물에서 당악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당나라 음악의 비중이 큼에 따라 재래음악, 즉 [[향악]](鄕樂)에 대조되는 [[당악]](唐樂)·당비파(唐琵琶)·당(唐)피리·당풍(唐風)의 범패(梵唄) 등 당나라에서 새로 수입된 음악 양식이 생기고 황종조(黃鍾調)·월조(越調)·평조(平調)·반섭조(般涉調)와 같은 당음악에서 쓰던 조들이 쓰이게 되었다. 한편 신라에 불교가 들어와 융성해지자 범패가 성히 불리고 또 당에서 새로운 범패가 들어오자 신라풍·당풍·당 이전의 고풍(古風) 이렇게 세 가지 범패가 불렸다. 신라의 재래음악은 가야금·춤·노래로 편성되어 악기는 가야금만이 쓰이던 것이 고구려의 [[거문고]]와 서역에 기원을 둔 비파가 쓰이고 대금 등 관악기가 도입되어 신라의 음악은 [[가야금]]·[[거문고]]·[[비파]]·[[대금]]·[[중금]]·[[소금]], 즉 [[삼현삼죽]]](三絃三竹)이 쓰이게 되었다.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 보이는 금환(金丸)·월전(月顚) 같은 것들이 모두 서역계 잡희(雜戱)인 것과 같이 서역계 음악의 영향도 받았다. 통일신라시대의 당악과 향악은 후세의 당악과 향악의 기초가 되었다.
 
신라에서는 음악을 관장하는 공식적인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진흥왕]]때는 '음성서'로 불리다 [[경덕왕]]때 '대악감'으로 고쳤다. 후 [[혜공왕]]때 다시 음성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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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한글이 1443년에 창제되었고, 1445년에는 조종(祖宗)의 성덕(聖德)과 신공(神功)을 가영(歌詠)하고 후손에게 경천근민(敬天勤民)을 명심케 하는 <용비어천가> 125장을 한글로 지었고, <치화평(致和平)>과 <취풍형(醉豊享)>이라고 칭하였다. <세종실록>에는 <치화평>과 <취풍형>이 각각 125장의 악보를 모두 기재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중에서 <치화평> 3기(三機)의 첫 16장과 졸장(卒章)만 연주하고, <취풍형>의 첫 8장과 졸장만 연주하였다. <대악후보>의 <치화평> 1·2기(機)의 경우에는 첫 3장만, 3기의 경우에는 첫 16장만 기보(記譜)되었고, <취풍형>의 경우도 첫 8장만 기보되었다.
 
;여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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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
해방 이후 전통음악을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새롭게 전통음악이 정립되고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여 왔다. 휴전 이후, 일부 국민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재인식이 차차 높아지고 정부의 지원이 있게 되면서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국악사양성소(國樂師養成所)·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국악예술학교·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등 정규 국악교육기관이 차례로 생겨서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새로운 학문을 닦은 신인들이 연주·창작·연구·교육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음악은 어느 면에서는 밝은 전망이 보인다. 그러나 한편 판소리·십이가사·십이잡가 같은 특수분야는 신인들의 진출이 많지 않아 거기에 대한 대비책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로 한국국악학회(韓國國樂學會)가 활약해 왔다. 오늘날에는 국악의 연주에 서양악기를 더하는 등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크로스 오버) 국악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국악기의 개량 등 창조적인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ref>실내악으로 작곡된 소나기, 퓨전 국악그룹 [http://www.soreagroup.com/ 소리아] 등이 그 예이다</ref>
 
==== 창작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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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음악 ==
한국현대음악은 일반적으로 1900년대부터 [[서양음악]]교육을 받고 [[서양음악]]의 악기, 양식, 음악어법 등을 사용한 한국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과, 1900년대부터의 현대적인 [[국악]] 작곡가로 나뉜다. [[서양음악]]은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들과 궁중 서양인 작곡가들 및 군악대를 통해 수용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김성태]], [[윤이상]], [[이상근]], [[강석희]], [[박영희]] 등이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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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
{{주석각주}}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