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여신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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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미국]]과 [[프랑스]] 국민들 간의 친목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의 모금운동으로 증정되었으며, [[1886년]]에 완공되었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19세기 이후 끊이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유입된 이민자에게 신천지의 상징이 되기도 헀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발코니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거기에서부터 전망대인 머리부분까지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여신상은 원래 등대였기 때문에 뉴욕 항을 향하고 있다. 횃불은 등대의 역할을 했었지만, 구름에 반사되어 선박 운항에 방해가 된다는 청원으로 등대의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 테러]] 사건 후 안전을 위해 이 전망대는 폐쇄되어 있었지만, [[2009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약 8년 만에 재개되었다. 재개 후에는 이 전망대에 입장 할 수있는 인원이 시간당 30명, 하루 24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입장은 예약이 필요하게 되었다.
발코니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거기에서부터 전망대인 머리부분까지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여신상은 원래 등대였기 때문에 뉴욕 항을 향하고 있다. 횃불은 등대의 역할을 했었지만, 구름에 반사되어 선박 운항에 방해가 된다는 청원으로 등대의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받침대 입구에 있는 현판에는 받침대를 지을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에머 래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The New Colossus'', 1883)이라는 소네트가 새겨져 있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 테러]] 사건 후 안전을 위해 이 전망대는 폐쇄되어 있었지만, [[2009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약 8년 만에 재개되었다. 재개 후에는 이 전망대에 입장 할 수있는 인원이 시간당 30명, 하루 24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입장은 예약이 필요하게 되었다.
 
받침대 입구에 있는 현판에는 받침대를 지을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에머 래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The New Colossus'', 1883)이라는 소네트가 새겨져 있다.
 
{{인용문2|정복자의 사지(四肢)를 대지에서 대지로 펼치는,<br />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는 같지 않지만<br />여기 우리의 바닷물에 씻긴 일몰의 대문 앞에<br />횃불을 든 강대한 여인이 서 있으니<br />그 불꽃은 투옥된 번갯불, 그 이름은 추방자의 어머니<br />횃불 든 그 손은 전 세계로 환영의 빛을 보내며<br />부드러운 두 눈은 쌍둥이 도시에 의해 태어난, 공중에 다리를 걸친 항구를 향해 명령한다<br />오랜 대지여, 너의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하라!<br />그리고 조용한 입술로 울부짖는다<br />너의 지치고 가난한<br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br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br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br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올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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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1874년]]에 라불레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에게 의뢰를 하였다. 설계는 [[에펠탑]]으로 잘 ​​알려진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를 했다. 자유의 여신상 본체는 동판을 두들겨서 모양을 내고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 르 뒤크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고안한 4개의 대형 철제 구조 위에 조립하여 만들어졌다. 상의 디자인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바르톨디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바르톨디가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이 숭배하는 [[마녀]] [[메두사]]라고 하는 설도 존재한다.
 
모금을 위한 기념상 건조 캠페인으로 복권과 [[1878년]]의 [[세계박람회]]인 [[파리박람회]]에 완성된 머리상을 전시하고 약 4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높이가 46.1m, 무게가 225t이나 되는 완성작은 [[1884년]] [[프랑스]] 파리에서 임시 완성 되어 214개로 조각으로 분해하여 프랑스 해군 군용 수송선 이제르 호를 통해 미국으로 수송되었다.
 
=== 받침대 ===
받침대 부분의 건설 자금은 《[[뉴욕 월드]]》 지의 사주인 [[조지프 퓰리처]]가 기금 모금 캠페인을 실시하여, 미국 국민의 기부로 충당했다.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가 고안하고 베들로 섬에 있는 우드 성벽 내부에 건립되었던 받침대는 나중에 완성되었다.
 
=== 제막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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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주석각주}}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