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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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
당나라 말기 [[율령제]]의 변질, [[균전제]]와 [[조용조]]의 변화, [[부병제]]의 붕괴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원의 치]]를 이끌었던 [[당 현종|현종]]은 [[양귀비]]에 빠져서 정치를 [[고력사]] 등의 [[환관]]들에게 넘겼고, 이로 인해 [[양국충]] 등의 외척과 환관들의 본격적인 환관-외척정치가 시작되었다. 환관과 외척들의 전횡과 부패 속에서 제도와 관리들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권력 다툼은 결국 [[755년]] [[안녹산]]에게 난을 일으킬 명분을 주게 된다.
 
부패한 관리와 환관정치로 인해, 수탈을 당할 대로 당한 농민의 소외로 자립 소농민층이 해체된 것도 원인이다. 해체된 자립 소농민층은 유민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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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
안사의 난으로 8년 간의 전란에 시달려 많은 농민들이 죽고, 당은 쇠퇴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 전란으로 인해 전국의 인구는 293만 호로 13년 전의 890만 호에 비해 70%의 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753년]] 52,880,488명의 인구가 [[764년]]에는 16,900,000명으로 기록되었다.
 
결국 당나라는 조세 제도는 [[양세법]], 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뀌었다. 수많은 반란 속에서 [[절도사]] 세력이 성장하였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였다. 결국 [[875년]] [[황소의 난]]을 거쳐 당나라는 절도사인 [[주전충]]에게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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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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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8세기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