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월 잭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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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어빙 맥도웰]]이 이끄는 32,000명의 북군이 리치먼드를 향해 남하했다. [[피에르 보우리가드]]가 이끄는 28,000명의 남군이 이를 맞아 싸워 7월 21일 [[제1차 불런 전투]](남부 측에서의 호칭은 제1차 매나서스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적 우세한 북군의 공세 앞에 남군의 전선은 무너졌으나 완강하게 저항을 계속한 부대가 있었다. 잭슨 여단이었다. 잭슨은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는 전장에 서서 부동자세로 지휘를 계속했다. 이것을 보고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버나드 엘리옷 비 2세]](Barnard Elliott Bee, Jr.)장군이 외쳤다.
 
{{인용문|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다. 여기서 죽도록 싸우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 나를 따르라!(''There is Jackson standing like a stone wall. Let us determine to die here, and we will conquer. Follow me'')<ref> Freeman, Lee's Lieutenants, vol. 1, p. 82; Robertson, p. 264. McPherson, p. 342, 맥퍼슨의 경우는 Stone wall 다음에 "나가자 버지니아 인들아"라는 부분이 첨가되어 있다.</ref>}}
 
비 장군은 얼마 후 전사한다. 남군은 반격에 나섰고, 북군은 무너지고 말았다. 잭슨은 '''스톤웰 잭슨'''이란 별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전투 때부터이다.<ref>비가 말을 하고 잠시 후 전사했기 때문에 명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존스턴의 참모장이었던 버넷 레트 대령은 잭슨이 비와 바토우의 여단이 공세에 노출되어 있는데 즉각 도와주지 않은데 대하여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원래의 진술은 "잭슨은 마치 돌담처럼 서있기만 하구나!"라는 탄식조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See, for instance, Goldfield, David, et al., The American Journey: 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Prentice Hall, 1999, ISBN 0-13-088243-7. 비가 말한 것과 그의 발언 전문에 대한 추측에 관해서는 Freeman, Lee's Lieutenants, vol. 1, pp. 733–3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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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잭슨은 소장으로 승진했다. 다음해 1862년 봄, 북군의 [[조지 B. 매클렐란]]이 이끄는 [[포토맥군]]은 바다로부터 남부동맹의 수도 [[리치먼드 (버지니아 주)|리치먼드]]에 압박을 가하는 [[반도 전역]]과 맥도웰이 이끄는 군이 북쪽에서 리치먼드를, [[나다니엘 프렌티스 뱅크스]]가 지휘하는 북군은 셰넌도어 계곡을 위협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잭슨은 셰넌도어 계곡을 방위하는 임무를 받았다. 여기서 잭슨의 계곡 전역이 시작되었다.
 
3월 23일 [[퀀즈타운 전투]]는 잭슨군의 패배로 끝났으나, 링컨에게 수도 워싱턴의 방위상의 불안을 안겨주어, 북군 일부를 전선에서 차출하게 만들어 전략상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이것은 계곡 전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잭슨의 유일한 패배였다.
 
증원을 얻은 잭슨군은 곧 [[맥도웰 전투]](5월 8일~9일)에서 [[로버트 H. 밀로이]]와 [[로버트 C. 쉥크]](Robert C. Schenck)의 부대를 격파했다. 다음 뱅크스의 군을 [[프론트 로얄 전투]](5월 23일)와 [[윈체스터 전투]](5월 25일)에서 격파했다. 잭슨군의 활동에 경악한 링컨은 [[존 C. 프레몬트]]가 이끄는 군을 보냈으나 잭슨은 그를 [[크로스 키즈 전투]](6월 8일)와 [[포트 리퍼블릭 전투]](6월 9일)에서 승리해 북군을 셰넌도어 계곡에서 몰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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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죽음 ==
1863년 봄, 북군의 포토맥군은 새로운 사령관 [[조셉 후커]]에 의해 11만의 대군으로 증강되어, 다시 공세에 나섰다. 리는 이에 대해 저지에 나섰다. 휘하에 약 18,000명을 남기고, 잭슨군단 28,000명을 서쪽으로 우회시켜 북군의 좌익을 찔렀다. 5월 2일 저녁 잭슨군단이 북군의 측면을 공격할 때 북군은 저녁식사와 여흥을 즐기고 있던 와중이었다. 공격은 기습이 되어, 다수의 북군병사들이 한발의 총알도 쏘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 후 4일간의 전투 끝에 북군은 후퇴하고 말았다.
 
저지에 성공하고, [[챈슬러즈빌 전투]]에서 남군은 빛나는 승리를 얻었으나, 한편으론 남군은 보충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전투가 끝나고 사령부로 귀환하던 잭슨과 사령부요원들은 이 일행을 북군의 기병부대로 오인한 남군의 노스캐롤라이나 연대의 장병에게 멈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장병들은 대답을 듣기 전에 발포하여, 잭슨은 3발의 총탄을 맞고 말았다.(왼쪽 팔에 2발, 오른쪽에 1발). 그때 그와 동행한 사령부요원도 몇 명이 이 오발사격에 희생되었다. 거기에 암흑과 오발사격에 의한 혼란으로 인해 잭슨은 재빠른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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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주석각주}}
 
==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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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stonewalljackson.org/ The Stonewall Jackson House]
 
{{기본정렬:잭슨, 스톤월}}
{{Authority control}}
 
{{기본정렬:잭슨, 스톤월}}
[[분류:1824년 태어남]]
[[분류:1863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