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1 바이트 제거됨 ,  4년 전
잔글
白:사:Ysjbserver요청으로 {{주석}}을 {{각주}}로 바꿈 total:18220, replaced: {{주석 → {{각주 using AWB
'''윤원로'''(尹元老, ? ~ [[1547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척신으로 본관은 [[파평 윤씨|파평]](坡平)이다. 파산부원군 [[윤지임 (1475년)|윤지임]]의 아들이자 [[윤원형]]의 형, [[윤원필]]과 [[윤원량]], [[문정왕후]]의 남동생이다. 대윤의 영수 [[윤임]]은 그의 아버지 [[윤지임 (1475년)|윤지임]]과 8촌형제 간이 된다.
 
[[김안로]]와도 사돈간이 되는데,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 [[조선 중종|중종]]과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의 딸 [[효혜공주]]의 장녀 [[김선옥]]은 그의 아들 [[윤백원]]과 결혼했다. 또한 그의 형 [[윤원필]]의 딸 [[숙빈 윤씨]]는 [[조선 인종|인종]]<ref>장경왕후의 아들로 효혜공주의 남동생이다. 따라서 윤원로는 효혜공주와는 10촌이면서 사돈, 인종은 10촌 이자 조카사위뻘이 된다.</ref> 의 후궁이었다. [[김안로]]의 사돈이면서 [[조선 중종|중종]]과는 처남매부간이자 [[조선 인종|인종]]의 처숙부이고 [[조선 명종|명종]]의 외숙부이자 [[조선 중종|중종]]의 딸 [[효혜공주]]의 사돈으로, [[조선 중종|중종]]과는 이중 삼중 인척관계에 있었다.
 
== 생애 ==
[[1515년]]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조선 인종|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17년]] 윤원로의 누나가 왕비로 간택되었다.
 
[[1537년]] 좌사어로 근무할 때 사돈인 [[희락당 김안로]](金安老)와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었다. 그 뒤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가 실패하자 관직에 복귀했다. 44년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었다.
 
중종이 죽고 1544년(인종 1년) [[조선 인종|인종]]이 즉위해 윤임의 대윤이 득세하자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7a2116a 윤원로 - Daum 백과사전<!-- 봇이 따온 제목 -->]</ref> 이후 그는 동생인 [[윤원형]], 조카 [[윤춘년]] 등과 짜고 [[윤임]]을 축출할 계획을 세운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인종]]이 죽고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다시 풀려나 [[군기감]]첨정이 되었다. 국왕의 장례는 5월장이 원칙이었으나 문정왕후·윤원형·이기(李芑) 등과 함께 '인종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니 대왕의 예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게 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해 7월 앞서 다시 [[윤임]] 등 [[대윤]](大尹) 일파를 축출하려고 대윤 일파가 경원대군을 해치려 했다고 무고(誣告)했으나, 영의정 윤인경(尹仁鏡)과 좌의정 유관(柳灌)이 망언(妄言)을 조작하고 천친(天親)을 이간한다고 탄핵함으로써 [[전라남도]]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대윤의 [[윤임]]은 그와 9촌 숙질간이 된다.
 
그 뒤 [[을사사화]]로 [[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됐다. 그 뒤 [[돈녕부]][[도정]]에 이르렀으나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1546년]]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에서 패하여 탄핵을 받아 파직 유배되고, 사사당하였다. 이 일로 그의 아들 [[윤백원]]은 윤원형의 정적인 [[이량]]과 결탁하게 되었다.
 
== 주석 ==
{{주석각주}}
 
[[분류:1547년 죽음]]

편집

18,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