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종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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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종교적이었고, 압도적으로 [[기독교]]적이었다. 17세기 개척자들은 대체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 공동체를 건설했으며, 18세기의 미국인들과 그들의 리더들은 미국 혁명(독립 전쟁)을 종교적인, 대개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았다. 미국 혁명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반영했고, '하나님이 택한 자들'과 영국의 '반 그리스도자들'의 전쟁이었다.
 
미국에서 종교는 신조의 형성을 도왔고 그것과 양립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자유적 프로테스탄티즘과 정치적 자유주의, 민주적 종교와 민주적 청치, 미국적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개신교도의 믿음 체계와 미국의 정치적 신조는 비슷한 사상적 특성을 보였고, 둘이 힘을 합쳐 19세기에 미국 사람들을 단결 시키는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이렇게 얘기 했다. "미국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유주의를 분리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국의 신조'는 하나님이 없는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 교회의 영혼이 있는 나라'의 세속적 신경(cred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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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앵글로-[[개신교]]도 문화는 영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및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개척자들이 갖고 와 신대륙에서 새롭게 꽃을 피운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개념들과 가치관에 결합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이 문화에는 영국의 전반적인 문화적 요소들과 개척자들이 속해 있던 영국 사회의 특정한 집단들에 독특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원래의 문화는 적응과 수정을 거치며 300년 동안 계속 되었다. 존 제이가 1789년에 근본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미국의 정체성]] 요소들-언어, 종교, 정부의 원척, 예절과 관습, 전쟁 경험-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미국의 문화를 규정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9세기와 20세기 후반까지 이민자들은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의 중심적 요소들에 헌신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강요, 유혹, 혹은 설득 당했다. 이민자들에게 미국화는 "엄청난 정신 적 억압의 과정이었다." 즉 1960년 대 이전에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버리고 기존의 문화적 기준에 완전히 동화 될 것을 요구 받았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와 정치적 가치관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인이 되었고, '''미국의 신조''' 를 탄생시킨 바로 그 문화의 중심에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ism)=저항주의'''가 있다. <ref name=autogenerated1>{{책 인용 |제목 =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저자 = 새뮤얼 헌팅턴|출판사 = 김영사}}</ref>
 
== 기독교 국가로의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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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개신교는 유럽의 개신교, 특히 기존의 교회들과 관련된 [[성공회]]나 [[루터교]]와 다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에드먼드 버키가 지적했는데, 그는 영국인들이 정치적 및 종교적 권위들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 경외심, 그리고 존경심을 미국인들의 치열한 자유 정신과 비교했다. 그는 이와 같은 정신이 미국식 프로테스탄티즘의 뚜렷한 특징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개신교도들이며, 생각과 정신에 대한 모든 묵시적 복종에 혐오감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모든 프로테스탄티즘은 가장 냉정하고 수동적인 것조차도 일종의 저항주의이다.
 
이와 같은 저항은 처음부터 뉴잉글랜드의 순례자들 pilgrims 및 [[청교도]]들 puritans 정착촌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청교도들의 교리까지는 아니어도 생각과 방식, 그리고 태도 등이 식민지들에 널리 퍼졌고 다른 신교도 집단들의 믿음과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정화되고, 때로는 수정되고, 때로는 희석되면서 [[청교도]]들의 전통은 미국의 핵심이 되었다.
 
처음에 [[청교도주의]] (puritanism)와 [[회중주의]] (congregationalism)에서 나타났던, 미국 [[프로테스탄티즘]]의 저항성은 그 후 수백 년 동안 [[침례교]], [[감리교]], [[경건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 [[성령주의]], 그리고 그 밖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다시 나타났다. 18세기부터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점점 더 대중적이고 덜 계층적이 되었으며, 점점 더 감정적이고 덜 지적인 것이 되었다. 교리보다 열정이 더 중요해졌다. 분파들과 운동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며, 한 세대의 저항적 분파들이 다음 세대의 새로운 저항자들로부터 다시 도전을 받았다. '저항자들의 저항(''Dissidence of dissent'')은 미국 프로테스탄티즘의 특성과 역사 모두를 설명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종교적 열정은 17세기와 18세기에 미국의 많은 분파들에서 뚜렷한 특징이었으며, [[복음 주의]] evangelicalism 는 다양한 형태로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에 중심이 되었다.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은 19세기에 "미국인들의 삶에서 지배적인 요인"이었고, 늘 "미국 종교의 주류"를 형성했다. 19세기 초에 미국에서는 종파, 설교자, 그리고 신도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종교적인 저항 내지 반항이 시대의 흐름이었다. 넘치는 힘의 젊은이들이 자의식적인 회부자로서 온갖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치열한 노력의 윤리, 확장에의 열정, 기존의 믿음과 방식에 대한 도전, 종교적 재건에의 헌식, 그리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 계획은 공유했다. 그들 모두 서민들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개인적 자긍심과 집단적 자신감의 강력한 비전을 제시했다. 따라서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는 단순한 종교적 운동의 역사를 넘어서며, 그것을 이해하면 19세기 미국인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ref name=autogenerated1 />
 
== 미국인들에게 종교의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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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민 종교로의 미국 기독교 신앙 ===
서구 유럽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지속적인 세속화(secularization)의 과정을 밟아왔다. 반면, 미국은 서구 사회의 세속화 경향에서 특이하게 예외적인 사례로 취급된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신에 대한 태도나 종교 활동 참여도는 지난 수십 년간 큰 변화가 없다. 미국인의 높은 종교성에 주목하여 미국인의 국가 정체성을 종교적 민족주의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다.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는 현대 미국에서 종교성과 국가 정체성이 결합된 상태는 설명하기 위해 [[공민 종교]](civil religious)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공민 종교란 정치권력에 정당성을 제공하고 사회적인 결속을 만들어내며 공동의 목적을 위해 사회 자원을 동원하는 신념, 상진, 의식, 제도의 체계를 의미한다. 원래 이 개념은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 종교적인 감정과 믿음의 체계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것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제공하는데, 이는 사회 계약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신성한 감정과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근원이다.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신성한 믿음이 사회통합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이 원시 사회의 종교 행위를 광범위하게 비교한 연구에서도 반복되었다. 뒤르켕은 한걸음을 더 나아가 모든 사회는 신성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원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감정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종교적인 믿음 체계에 반영된 사회의 상징적 이미지는 사회 규범에 신성성을 부여하며 구성원들이 공통의 가치에 헌신하도록 함으로써 사회를 통합시킨다. 로버트 벨라와 같이 미국 사회에 공민 종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서구 산업 사회에서 비록 제도적인 종교의 위치는 약화 되었지만 종교적인 믿음에 뿌리를 둔 사회에 대한 경외심은 사회를 통합시키는 데에 여전히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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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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