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설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Jwseo21(토론)의 편집을 121.67.239.20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15번째 줄:
|친척 = [[진사왕]](작은아버지) <br /> [[아신왕]](동복 형) <br /> [[부여훈해]](동복 형) <br /> [[부여홍|부여 홍]](이복 서형) <br /> [[전지왕]](동복 조카) <br /> [[부여신|부여 신]](동복 조카)
}}
'''부여설례'''(扶餘碟禮, ? ~ [[405년]])은 [[백제]](百濟)의 [[왕족]](王族)이자 [[정치가]](政治家)이다. 일명 '''부여접례'''(扶餘褋禮), 혹은 '''부여첩례'''(扶餘諜禮)라고도 불리웠다.성은 부여(서)(夫餘(徐))이다.
 
[[백제 아신왕]](百濟 阿莘王)의 막내 아우로 [[405년]] 첫째 형 [[아신왕]](阿莘王)이 붕어(崩御)한 후 임시 [[섭정]]으로 입각을 한 둘째 형 [[부여훈해]](扶餘訓解)를 시해하고 자신이 섭정과 보위를 참칭하였으나 조카인 태자 [[전지왕|부여 영]]([[전지왕]])이 [[일본]]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백제 대신들에게 암살되었고 [[일본]]에서 백제로 귀국한 태자 [[백제 전지왕|부여 영]](扶餘 映)이 [[전지왕]](腆支王)으로 보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