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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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시대에 들어 가마쿠라는 예술가들의 도시가 되었다. 이미 [[1889년]](메이지 22년)에 [[요코스카 선]](横須賀線)이 개통되어 가마쿠라가 수도 도쿄(東京)의 통근권역에 들게 되었기에 도쿄에 소재지를 두었던 출판사와도 오가기 용이했을 뿐 아니라, 간토 대지진의 피해가 극심했던 도쿄를 떠나 일본의 저명한 작가나 문인 가운데 일부가 도쿄에 비하면 그나마 피해도가 덜한 편이었던(물론 [[쓰루가오카하치만구]]의 붕괴 등 가마쿠라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가마쿠라로 이주하고, 패전 뒤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다카미 슌(高見順)이나 나카야마 기슈(中山義秀) 등이 이곳에서 대본실(貸本屋) 「가마쿠라 문고(鎌倉文庫)」를 꾸리는 등 '가마쿠라 문사(文士)'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ref>다만 현재는 문사(文士)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 내에서도 사어(死語)가 되고, 가마쿠라 문사라는 말도 쓰이지 않는다. 21세기에 들어 일본의 많은 유명 작가들이 가마쿠라로 이주해 40년만에 가마쿠라 펜클럽이 부활하는 등 신(新) 가마쿠라 문사라 불릴만한 작가층이 탄생하기도 하는 등, 가마쿠라에 체재하는 고명한 문학자도 적지 않다. [[재일]] 출신의 일본 소설가 [[김윤규]](일본명 다치하라 마사아키)와 [[유미리]]도 대표적인 가마쿠라 문사로 꼽힌다.</ref>
[[1936년]](쇼와 11년)에는 일본의 영화ㆍ연극 회사인 마쓰타케(松竹)가 촬영소를 가마타에서
== 교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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