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 (발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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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위 ==
[[고왕]]은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과 격돌, 크게 격파하고 [[동모산]](東牟山)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고왕이 [[719년]] 붕어하자 보위를 승계하고, 연호를 고쳐 인안(仁安)으로 하였다. [[무왕]]는 즉위 직후부터 지속적인 영토확장을 꾀했고 [[726년]] 부여의 후계 국가인 [[두막루]]를 비롯하여 여러 말갈부족을말갈 부족을 발해로 병합하였다. [[무왕]]은 [[727년]] [[발해]]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였는데, 이때 보낸 [[국서]](國書)에서 “여러 나라를 아우르고 여러 [[번국]](蕃國)을 감독하니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지녔다.”고 일컫었다. [[발해]]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옛 [[고구려]] 영토를 빠르게 회복했다. [[신당서]]에는 [[발해]]가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이민족]](東北諸夷)들이 겁을 먹고 무왕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 대문예와의 갈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