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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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5월 15일]] [[수도경찰청]] 청장인 [[장택상]]은 '조선공산당 인사들이 정판사에서 약 1천 2백만원 어치의 위조 지폐를 찍어 유포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관련자들을 체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선공산당의 활동 자금 마련과 남한 경제의 교란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었고, 조선공산당은 조작 사건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의 주범은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인 [[이관술]]과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이고, 이들의 지시로 정판사 사장 [[박낙종]](정치인 [[박지원]]의 조부), 서무과장 [[송언필]]이 위조 지폐를 인쇄해 유통시켰다. 조선공산당 당원이며 일제 강점기 부터 정판사 직원이었던 [[김창선]]이 지폐 인쇄판을 미리 훔쳐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권오직은 38선 이북으로 달아났고, 이관술은[[이관술]]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선고받았다.
 
== 영향 ==
이 사건으로 정판사는 좌우이념대립당시 [[우파 (정치)|우파]] 노선을 걷던 [[천주교회]]에 불하되어 이름을 바꾸고 《[[경향신문]]》을 인쇄하게 되었다. 《해방일보》는 무기정간 조치로 폐간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으며 조선공산당은 당사 압수 수색을 받은 뒤 입주해 있던 건물에서 쫓겨났다. 조선공산당이 이 사건이 날조되었다고 주장, 미군정에 강경한 반미 공세로서 맞서면서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이 서둘러 월북하는 계기가 되었다.
 
== 조작 의혹과 논란 ==
이 사건의 중요한 증거는 피고인들의 자백이었는데, [[이관술]]을 비롯한 이들은 경찰과 검찰에서 진술이 고문때문이었다며 재판 과정에서 피의 사실을 번복했다.<ref name="ReferenceA">{{서적 인용
|저자=한상철,이영복 공저
|제목=내가 쓰는 한국 근현대사
|발행일자=2011-03-25
|출판사=우리교육
|출판위치=서울
|id=ISBN 978-89-8040-940-2
|장=p125
|꺾쇠표 = 예
}}</ref> 이외에 유일한 증거로 확보된 것은 만원권 위조지폐 2장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위조지폐 사건이 많아서 이를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했고, 당시 공산당이 돈이 궁핍했다는 자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익진영이 위조지폐를 찍어 사회 혼란을 조장하려 했다는 주장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1946년]] [[11월 23일]] 선고공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었고, [[이관술]]은 종신형을 받았다.<ref name="ReferenceA"/>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이후 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더이상 풀리지 않게 되었다.<ref name="ReferenceA"/>
 
== 주석 ==
<references/>
 
==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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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토막글|한국 근현대사한국근현대사}}
 
[[분류: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