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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둔군은 설치된 이후 토착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기원전 82년에 진번군과 함께 폐지되었다. 임둔군의 영역은 현도군에 편입되었는데, 다시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이 토착민들의 저항 때문에 북쪽의 신고구려현(新高句麗縣)으로 옮겨지자 소속 15개 현 가운데 7개 현이 낙랑군에 편입되었다. 낙랑군에 편입된 현은 단단대령(單單大嶺)으로 막혀 있었고 거리가 너무 멀어 낙랑군이 직접 관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동부도위(東部都尉)가 설치되었다. 동부도위의 7현은 [[30년]]에 철폐되었다.
 
== 위치에 대한 논란 ==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강릉]]에 임둔이 위치해 있었다고 보았으며<ref>《고려사》〈지리지〉 / 《세종실록》〈지리지〉 등</ref> 강원도 일대라는 주장, 경기도 서부 지역이라는 주장 등이 제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낙랑군을 발굴 조사하면서 한군현에 대한 비정이 이루어졌을 때, 임둔군은 함경도 남부 및 강원도 일대로 비정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351&cid=1590&categoryId=15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둔군 항목] 네이버 제공</ref>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는 영흥 소라리 유적 및 부조예군 인장 등의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함경남도 남부와 강원도 북부 일대가 임둔군이라 보고 있다.<ref name="임둔군"/>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발굴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 주장하며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 [[랴오닝 성]] 서부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임둔군이 요서 지방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ref>복기대,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를 통해 본 한사군의 위치〉, 《백산학보》 61집</ref>
 
== 관련 항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