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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 Seoul Metropolitan Council1.JPG
| 그림설명 =
유형=[[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등록문화재]] |▼
| 국가 = {{KOR}}
▲이름=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
| 번호 = 11
제작_시기=[[일제강점기]] |▼
| 해지 =
▲비고=| 지정연월일 = [[2002년]] [[5월 31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 소유 = 서울특별시
| 참고 =
| 면적 =
| 수량 = 1동 연면적 7,0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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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서울 구 국회의사당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37 |위도분 = 34 |위도초 = 3.2 |남북 = N
| 경도도 = 126 |경도분 = 58 |경도초 = 35.8 |동서 = 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79,00110000,11
}}
[[파일:Keijo Public Hall.JPG|thumb|일제 강점기 당시의 부민관]]▼
'''부민관'''(府民館) 또는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은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 의해 운영된 부립(府立)의 다목적 홀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 3층, 연면적 5,676m², 높이 45m로, 현 [[태평로 (서울)|태평로]] 1가에 있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한 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특별시]]의 [[서울특별시의회|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 역사 ==
부민관터는 본래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경성전기회사]]는 서울의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댓가로 50만원을 납부하였다. 그 돈을 바탕으로 경성부의 부민들을 위하여 5,600여 제곱미터의 규모의 다목적 강당을 지어 문화공연장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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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군 사령부가 사용하였고, 한국전쟁 때 서울수복 이후부터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을 하였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별관로 이용하다가 지방자치제 확대 실시와 함께 서울시의회가 사용하게 되었다.
{{-}}
▲[[파일:Keijo Public Hall.JPG|thumb|일제 강점기 당시의 부민관]]
[[파일:부민관 폭파 의거 3인.JPG|thumb|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1945년 7월 24일에 부민관에서는 [[박춘금]]의 '아시아민족의 해방' 강연회와 '남년청년 분격웅변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조문기]], [[유만수 (1924년)|유만수]], [[강윤국]] 등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 [[경성부]]▼
▲1945년 7월 24일에 부민관에서는 [[박춘금]]의 '아시아민족의 해방' 강연회와 '남년청년 분격웅변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것을 [[부민관 폭파 의거]]라고 부른다.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부민관 앞에 서있다.
* [[부민관 사건]]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79,00110000,11}}
▲*[[경성부]]
▲*[[부민관 사건]]
[[분류:서울 중구의 문화재]]
[[분류: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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