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노 시게모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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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 2년(1170년) 7월 3일, 호쇼지 핫코(八講, 경전 강독 법회) 첫날, 섭정 마쓰도노 모토후사(松殿基房, 후지와라노 모토후사)의 시종이 참배 도중에 만난 다이라노 스케모리(平資盛)의 가마의 무례를 비난하며 굴욕을 주었다. 그 뒤, 그 가마가 시게모리의 아들 스케모리의 가마라는 것을 알게 된 모토후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즉시 시게모리에게 그 시종을 넘겨 주며 사죄하지만, 시게모리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모토후사는 보복을 두려워하여 당분간 외출을 그만두었다. 잠잠해졌다고 생각된 10월 21일, 천황의 관례 건으로 모토후사가 입궐하던 도중에 시게모리의 무사들이 모토후사의 행차를 습격해 관모를 뺏고 상투를 자르는 등의 난동을 부렸다.
 
이 사건 때문에 천황의 관례마저 지연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시게모리는 천황의 메노토(乳父)였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게모리를 높게 평가하고 있던 승려 지엔(慈円)도 역시 이 사건에 대해서는 곤혹스러워했다. 이 사건 때문인지 12월에 시게모리는 재차 곤노다이나곤을 사임한다. 이듬해([[1171년]]) 정월 3일 치뤄진 천황의 관례 의식에도 시게모리는 결석하였다. 이 의식의 진행을 맡은 것은 겐슌몬인(建春門院) 시게코의 형제 다이라노 치카무네지카무네(平親宗)와 주나곤으로 승진해 있던 시게모리의 이복형제 무네모리였다. 무네모리의 대두는 시게모리의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 우코노에다이쇼, 나이다이진 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