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 (섬서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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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에 이 지역은 채색토기가 특징적인 [[양사오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은나라|은]](殷) 말기에 주족(周族)의 우두머리였던 문왕이 풍(豊, 시안 부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강하게 했으며, 그의 아들 [[무왕]]은 호(鎬, 시안 두문현 일대)에 도읍을 정하고 은(殷)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기원전 1122년]] 또는 [[기원전 1027년]]). 전설에 따르면, 주나라 첫해에 무왕의 형제 [[주공]]과 [[소공]] 사이의 알력으로 하남성 서부의 섬현을 경계로 하여 동서를 주공과 소공이 나누어 가지면서 섬서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10세기에 주 효왕이 목축으로 유명했던 비자(非子)에게 진 지역(현재의 [[간쑤 성]] [[텐수이]] 서남부)을 비자에게 하사하면서 [[진나라]]가 성립된다. 기원전 771년 [[견융]]의 침입으로 호(鎬)가 함락당하고, 유왕이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진의 양공이 견융을 치고 유왕의 아들 평왕을 낙양까지 호송한 공으로 산시 성 서부를 하사받게 된다. 기원전 659년 진 목공은 동쪽의 진(晉)나라를 쳐서 관중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산시 성 지역은 진(秦)으로도 불린다. 진은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다.
 
단명한 진의 뒤를 이은 [[한나라]]는 [[장안]](長安)에 도읍을 정하고 장안 인근을 군(郡)에 해당하는 경조윤, 좌풍익, 우부풍 세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한다. [[왕망]]에 의해 왕조가 잠시 끊어진 후 한나라는 수도를 낙양으로 옮긴다. 한말에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나 곧 죽고, 혼란이 계속되다가 결국 [[위 (삼국)|위]]에 점령당한다. 이후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촉나라|촉]]과 이를 막으려는 위의 격전이 치산을 중심으로하여 계속되었다. [[오호십육국]]의 혼란기 동안 유목민족의 여러 나라들이 이 지역을 점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