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류타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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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소비세 증세, 건강보험 자가부담 비율 인상, 특별 감세 폐지 등 총액 10조 엔 규모의 긴축재정과 금융 불황의 여파로 1999년 명목 GDP는 전년 대비 -3%인 513조 엔으로 15조 엔 감소한 것이었다.
 
[[1997년]] 6월, [[하시모토]] 총리는 덴버 8개국 정상회담 직후“일본이 보유중인 미국 국채를 매각하지 않도록 미 정부도 외환시장에 협력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며 일본이 보유한 미국 채권을 매각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다우존스 지수는 6월 24일, 87년 이후 10년만에 최악인 -3%의 대폭락을 기록했고 이에 분노한 미국의 고위관료들과 경제인들에게 하시모토 총리는 웬수와 같은 존재였다.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62500289107014&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6-25&officeId=00028&pageNo=7&printNo=2914&publishType=00010 미 주가 사상 두번째 폭락] 1997.6.28 한겨레</ref> 이 당시에 일본의 미국 국채 매각 경고에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에게 일본의 미국채 매각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며 일본의 미국채 매각에 대해 가능성이 없는 현실이란 분석을 했지만 <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475575&ctg=10 일본총리 '미국국채 매각'발언 진의관심] 1997.6.26 동아일보</ref>
 
이 사건으로 [[하시모토]] 는 미국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당시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의 [[imf]][[사태]]라는 복합적 상황과 맞물려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1997195_13450.html 엔화 가치 폭락해 아시아 경제 휘청] 1998.6.13 mbc </ref> 1998년 7월, [[미국]]과 미국 언론들은 미국정부에게 눈엣가시였던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의 총리직 사임발표 당시 특종으로 보도하며 "미국경제가 드디어 일본을 꺾었다"라는 식의 자화자찬적 보도를 내며 기뻐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미국]]이 [[하시모토 류타로]]총리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심한 반감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3947_13450.html 미국, 차기 수상 선임 앞두고 일본 때리기 나서] 1998.7.16 mbc </ref>
 
[[1997년]] 6월 23일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연에서 "일본이 [[미국]] [[국채]]를 축적하는 것은 이득인가?"에 관해서 질문이 나오자 하시모토는 "미 국채를 매각하려는 생각은 여러번 했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주는 세계 경제에의 영향 등을 이유로 "미국 국채를 매각해 엔화로 바꾸려 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미국]]의 세계경제 영향력을 감안해 참는다"라고 답하여 일본의 미국채권 매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대량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일본 총리가 "미국 국채를 매각"에 언급한 점이 주목되면서 뉴욕 증권 거래소 주가가 -3%나 급락하는 사건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