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광대다라니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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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
하지만 최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당시 함께 발견된 묵서지편(墨書紙片)이 해독되면서 제작 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묵서지편은 고려시대에[[고려시대]]에 석가탑을[[석가탑]]을 중수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문서인데, 복원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한동안 보관해 오다가 90년대부터 복원, 판독이 시작되었다. 묵서지편에는 중수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함께 봉인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고려시대에[[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은 탑을 창건할 때 넣었던 다라니경을 고려 때 보수하면서 도로 집어넣었다는 사실을 적은 것으로 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더구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때 탑에서만 발견되며 고려로 넘어오면 ‘보협인다라니경’으로 완전히 대체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다라니경이 발굴된 신라 탑은 10여기에 이르지만 고려 탑에서는 발굴된 예가 없다. 또 1007년 간행된 보협인다라니경은 정교한 인쇄기술로 제작된 반면 다라니경은 초보 수준이다. 인쇄기술로 봐도 다라니경이 보협인다라니경보다 나중에 제작됐을 가능성은 없다낮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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