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야구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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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구칭 = 경성운동장 야구장(1925년~1945년)<br>서울운동장 야구장(1945년~1984년)
|사용팀·대회 = [[1982년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세계야구선수권대회]] (1982년)<br /> [[KBO 올스타전|프로야구 올스타전]](1982년 (3차전))<br />[[LG 트윈스|MBC 청룡]] (1982년)<br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1985년)<br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1946년~2007년)<br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947년~2007년)<br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967년~2007년)<br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971년~2007년)
|수용인원 = 30,000명 (좌석 - 26,874석)
|규모 = 경기장 면적 - 12,853㎡<br />좌우 펜스 - 98m<br />중앙 - 11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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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운동장 야구장은 프로 야구가 출범하기 이전(1960년대 ~ 1980년대 초)까지 학생 야구 대회의 메카로 군림했다. 이 곳에서 고교 야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이 만원 사례를 이룰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당시에는 TV 뉴스를 중단하고 야구 중계를 속개할 정도로 고교야구의 열기가 대단했다.
 
[[1982년]] [[3월 27일]]에는 갓 출범한 [[KBO 리그|한국 프로 야구]]의 첫 시즌 개막전이 이 구장에서 열렸다([[LG 트윈스|MBC 청룡]] 11 - 7 [[삼성 라이온즈]]).
 
[[198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3차전이 이 구장에서 열렸다. (동군이 10-5로 승리하였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LG 트윈스|MBC 청룡]]이 이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었고, 그 해에 [[잠실야구장]]이 완성되면서 홈 구장을 [[잠실야구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잠실야구장]]이 완성됨에 따라 1985년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이름은 '''동대문야구장'''으로 개칭되었다. [[1985년]]에는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서울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이전해 오면서 이 구장을 홈 구장으로 이용했었고, 이듬해에 홈 구장을 [[잠실야구장]]으로 변경했다.
 
그 이후에 아마추어 야구 전용 구장으로써 한국의 4대 메이저 고교 야구 전국 대회([[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대통령배]])나 대학야구 대회의 개최 구장이 되었는데 1988년 9월 이후에는 [[서울 올림픽]] 개최 동안 [[LG 트윈스|MBC 청룡]]과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홈경기장으로 사용했고 1989년 9월 16일부터 23일까지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가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바람에 [[LG 트윈스|MBC 청룡]]이 임시 홈구장으로 썼는데 그 해 9월 24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와의 더블헤더 2차전이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였다.
 
그러나 지나친 경기량의 과부하로 천연잔디 그라운드가 크게 훼손돼, 그라운드 보존 및 관리 편의를 위해 [[1989년]] 말 천연잔디를 걷어내고 인조잔디를 그라운드에 설치했다. 또한 천연잔디 그라운드보다 인조잔디 그라운드에서 야구공이 더 높이 튄다는 점을 감안해 외야 펜스를 기존 1.6m에서 3.2m로 높였다. (기존 펜스 위에 1.6m 높이 그물망 추가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