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717-71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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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여파 ==
[[File:Caliphate 750.jpg|thumb|right|250px|당대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의 지도. 우마위야 왕조의 팽창이 끝났을 시점의 비잔티움 제국과 우마위야 왕조의 판도를 보여준다. 750년 경.]]
아랍인들의 패배는 그들의 전력에 심각한 타격이 되었다. 전투에 동원했던 함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육군도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뼈아픈 손실을 입었다. 때문에 칼리프는 [[실리시아]]를 비롯한 이전의 비잔티움 영토에서 전군을 철수하고, 심지어 [[이베리아]]와 트란스옥시아나에서의 정복 사업까지 중단할 것을 고려할 정도였다. 비록 측근들의 만류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대부분의 과거 비잔티움 영토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랍 군대는 철수하였으며, 실리시아에서도 [[몹수에스티아]]만이 [[안티오키아]]를 사수하기 위한 방어 요새로 이용하기 위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은 서부 아르메니아를 일부 회복하고, 719년에는 비잔티움 함대가 시리아 해안을 약탈하고 [[라오디케아]]의 항구를 파괴하였으며, 720년과 721년에는 [[이집트]]의 [[티니스]]를 공격해 약탈하기도 했다. 또한 레오는 [[시칠리아]]를 수복할 수 있었는데, 이 지역은 아랍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을 공격할 당시 도시가 함락될거라 확신하고 황제를 자처하였던 [[바실 오노마글로스]]가 통치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비잔티움 측은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잃기도 했고, 총체적으로 볼 때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승리를 잘 활용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군사적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공방전이 있은지 2년 후인 720년, 아랍인들의 비잔티움 측에 대한 공세가 재개되었으며, 이는 이전과는 달리 전리품을 얻기 위한 약탈의 형태로 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공세는 비잔티움 군대가 740년 [[아크로니온]]에서 대승을 거두기 전까지 20년 동안 계속해서 강화되어갔다. 그리고 이 두 번의 심각한 패배는,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아랍 측의 군사적 실패와 맞물려 [[아바스 왕조]]의 대두를 불러왔고, 이후 아랍 세력의 팽창은 종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