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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련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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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은고(恩古)의 집안은 대대로 상단을 이끄는 일을 하였다. 의자왕과[[의자왕]]과 은고는 궁밖에서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데 은고의 미모가 빼어나 의자왕은 은고에게 반하였고 후궁 목비로 책봉하여 총애하였다고 한다. 책봉된지 얼마 안 되 아들 부여 효를 낳았다고 하는데, 이때 왕후였던 연씨가 목비를 질투하여 쫒아내려고 하기도하였다. 의자왕이[[의자왕]]이 병석에 눕자 태자를 정하는 정사암 회의를 열었는데, 연씨의 아들 부여 태가 태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씨는 마구 권력을 휘둘렀고, 이를 의자왕에게[[의자왕]]에게 들켜 결국 쫓겨나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후궁이었던 목비는 왕후에 올랐다.《[[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고, 《[[일본서기]]》에 기록이 남아 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하자 [[660년]] ([[백제 의자왕|의자왕]] [[20년]]) 7월 13일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붙잡혀 [[당나라]]로 끌려갔다.
 
최근에는 《[[삼국사기]]》가 [[신라]] 입장에서 저술했다고 하여 새롭게 은고라는 인물을 조명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