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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렴으로 추천되어 삼공부에 추천되었으나 공거를 보내도 모두 거절했으며, 후에 영제가 죽었을 때 하진은 정치를 보좌받기 위해 그와 [[순유]], [[화흠]]을 등용해 정태를 상서시랑으로 삼으면서 봉거도위의 관직을 더했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는 [[하진]]이 모든 군벌들을 수도로 징발해서 환관들을 주살하려고 하자 정태는 [[동탁]]만은 불러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인용문2|동탁은 강력 잔인한 자로 도의를 가벼이 여기고, 탐욕에 넘쳐 의기 따위는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혹여 그에게 조정의 일에 간여케 하면 그 마음 먹은 대로 굴어 조정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명공의 위신, 덕의를 가지고 아형들을 모아 의지를 굳혀 죄인들을 주살해 배척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실로 동탁을 들어 후원자로 삼으려 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계획을 서둘다가 일이 어그러지는 것은 먼 옛날의 견본을 찾으려 할 것도 없습니다."
}}
 
 
그러나 하진이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탁도 수도로 불러들이려 하자 순유에게 "하진은 섬길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며 미련없이 관직을 떠나고 낙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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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유학자의 헛소리인데, 동탁이 그러면 병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정태는 산동으로 대군을 투입할 필요 없이 자신에게 원소를 토벌할 책임을 맡겨 달라면서 다음과 같이 열 가지 이유를 대면서 동탁을 설득하는데, 그 내용은 반동탁군을 깎아내리고 동탁을 치켜세우는 문구이다.
 
"{{인용문2|지금 산동에서는 군벌들이 함께 모여 주와 군은 서로 연합하고, 사람들은 서로 연계하고 있어 강성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무제 이래로 중국은 큰 전쟁이 없어 백성들은 안일함에 젖어 전쟁의 나날을 잊고 산 지 오래입니다. 공자 말씀에 "사람들에게 싸움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혹여 산동군이 숫자가 많다고 해도 이들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유의 하나입니다.
 
명공은 서방의 주(양주)에서 나오셨고, 젊어서 나라의 장수가 되셨으니 평시에는 군사 조련을 행해 수없이 전장에 나서 그 명성이 당세에 널리 퍼져 사람들은 명공을 두려워하고 복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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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제가 이야기한 열 가지 이유 가운데 조금이나마 이치에 닿아 채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군사를 새로 모집해 천하를 놀라게 하거나, 걱정과 병역을 찌든 백성들을 서로 모여 위법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덕을 버리고 세력에 의존해 위광의 두터움을 가벼이 내는 행동은 마시기 바랍니다."
}}
 
 
자신에게 반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태가 이렇게까지 찬동하자 동탁은 감격하면서 정태를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하는데, 옆에 있던 [[가후]]가 사실 정태는 동탁의 환심을 사서 자기가 병력을 운용해보겠다며 나서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동탁이 임무를 맡기면 오히려 원소와 합세할 것이라 조언했다.
 
"{{인용문2|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결탁해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병마를 맡기면 그 무리에게 가세하려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명공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
 
그 말에 정신이 든 동탁은 정태를 장군으로 임명한 것을 취소하고 몰수하고 의랑<ref>議郞: 하는 일은 황제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 밖에 없는 벼슬이다. 황제가 없는 일도 찾아서 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매우 바쁜 직책이 될 수도 있지만 [[후한 영제]]는 그런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무보직과 다름없었다.</ref>으로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둔다.
 
그 후 동탁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장안으로 천도할 때 기근까지 발생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죽자 정태는 개인 재산을 풀어 날마다 빈객들을 모아 구조해 많은 사람을 구한다. 또한 하옹과 순유, 오경, 충집과 더불어 계획해 함께 동탁을 주살하려 했으나 사건이 누설되어 하옹 등이 붙잡혔다. 이때 정태는 탈출해 무한에서 동쪽으로 도주해서 원술에게 갔는데, 원술은 정태의 의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원술이 정태를 양주자사에 제수하려 했지만 정태는 관직에 오르기 전에 도중에 병에 걸려 죽으니 당시 41세였다.<ref>원술은 후에 정태의 동생 정혼을 회유하려고 했지만 정혼은 원술이 잘 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해 도망친다.</ref>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