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2번째 줄:
== 종교에서의 영혼 ==
<!--역사적 순서대로 쓸 것.-->
=== 고대서양 이집트세계 ===
==== 고대 이집트 ====
{{본문|고대 이집트의 영혼}}
고대 이집트에서의 영혼은 '새'로 표현되는 '카'(ka)와 사람의 인격 혹은 자아를 의미하는 '바'(ba)로 나뉜다. '카'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이며, 반면에 '바'는 사람이 죽어도 육체에 남는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신의 [[심장 무게 달기 의식]]재판을 통해 정당한 영혼임을 판정받은 자는 '카'와 '바'가 다시 합쳐져, '아크'(Akh)가 되어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바'가 머물러 있는 육체를 계속 보존시키기 위한 [[미라]]와 같은 독특한 장례의식이 발생하였다.
 
==== 고대 그리스 ====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을 인간생활의 원칙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자체가 삼부(三部)구조로 되어 있어서 감각적인 욕정의 원리인 탐욕혼이 복부에 자리 잡고 있고, 용기와 정기의 원리인 기혼(氣魂)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각의 원리인 지혼(知魂)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지혼은 불멸의 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기독교 ====
기독교에서 영혼은 인간의 육신은 마치 사람이 육체에 옷을 입는 것 같이 영혼에게 입혀진 것이 옷이 육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혼의 존재는 불멸이며, 모든 인간의 영혼은 죽은후 야훼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대해서 심판을 받고 천국 혹은 지옥으로 나뉘어 가게 된다고 믿는다. 즉 인간의 육체는 영혼이 존재하는 동안 거하는 임시거처일 뿐이며,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억을 포함한 자아는 영혼에 존재하기 때문에 육신보다 영혼을 더욱 중요하게여기며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각 개인의 사후세계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 행할 것을 가르친다.(그러나 사후세계만을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줄 43 ⟶ 44:
창조설(creationism)은 교회의 정통사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로서 인간의 육신과 영혼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은 창세기를 기반으로 한 교리이지만 각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영혼이 어떻게 생겨나느냐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다. 이에 대하여 락탄시오(Lactantius), 암브로시오(Ambrosius), 예로니모(Hieronymus) 등 교부들의 주장을 종합하여 롬바르도(Petrus Lombardus, 1100?∼1160)는 이렇게 주장하였다.“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 창조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설을 지지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으로 철학적인 설명을 하였다. 즉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개성의 실체를 이룬다.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구성 원리이기는 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르다. 아퀴나스의 인간관은 스콜라 학파의 일관된 주장이며 [[교회]]는 이 설을 정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白敏寬)
 
=== 유교동양 세계 ===
==== 유교 ====
유교에서는 천지만물이 음양, 오행, 기의 집합으로 생겨나고, 또한 그 기의 흩어짐으로 없어진다고 한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의 모임으로 태어났다가 그 기의 흩어지는 현상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혼백(魂魄) 역시 음양의 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일이 지나면 마침내 흩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기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한번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손을 통해 대를 이어감으로써 그 허무함을 달래고 영생의 욕구를 대신한다. 대가 끊어지는 것을 영생이 단절된다고 생각한다<ref name="블로그">{{웹 인용 |url=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sea47&logNo=6006437296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ref>
 
==== 불교 ====
불교에서는 내세관이 뚜렷하였다. 죽음은 곧 다른 삶의 시작으로 종말이 아니며 전생의 업보에 따라 금생(今生)에 태어나서 다시 업을 짓고 죽으면 그 업과(業果)에 따라 내세가 열리지만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은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저장된 업식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천상으로 윤회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업을 닦고 내세를 예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 본다. 그러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윤회의 고리를 끊은 해탈을 하여야 된다. <ref name="블로그">{{웹 인용 |url=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sea47&logNo=6006437296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ref>
 
==== 도교 ====
도교는 현세에 중심을 둔 종교로써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이란 너무 허무한 것이기에 죽지 않는 長生不死 와 신선이 되는 성선(城仙)의 길을 택했다.
도교의 대표적인 서적인 ‘포박자’를 쓴 진나라의 갈홍은 거북과 학은 오래도록 산다고 하면서 어찌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겠냐고 갈파한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초기에는 불로초나 불사약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후에는 방향을 바꾸어 정신적 수양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도교에서는 죽음에 대한 해석을 신체는 관에 들어가지만 영혼은 신선세계에 간다고 했다. 이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시해(尸解)이다<ref name="블로그">{{웹 인용 |url=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sea47&logNo=6006437296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ref>
 
==== 이슬람교 ====
기독교와 그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크게 갈등한다. 기독교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다고 하는 원죄설을 주장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죄란 현세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에 의하여 오염되거나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들어내는 자 범죄일뿐 원죄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죄가 없더라도 있는 죄가 씻김을 받지 않고서는 순결무구한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으므로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르자크(연옥)’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씻김이란 변태하는 과정이고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ref name="블로그">{{웹 인용 |url=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sea47&logNo=6006437296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