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누스 2세 (아키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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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년]] 형제 샤를과 함께 세인트 메다르 수도원에서 탈출에 성공한 피핀 2세는 대머리 [[카를 2세]]에 맞서 싸울 [[바이킹 족]] [[용병]]을 고용하였다. 피핀은 자신의 옛 영토에 [[바이킹 족]]의 정착을 주도했다. 대머리 [[카를 2세]]의 아들 [[샤를 3세 (아키텐)|유아왕 샤를]]은 군사를 이끌고 [[푸아티에]] 지역을 공격하였다. [[855년]] [[10월]] [[라모]]에서 열린 [[아키텐]]의 귀족회의에서 [[샤를 3세 (아키텐)|유아왕 샤를]]을 아키텐 왕으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피핀 2세는 자신의 옛 영토인 [[루아르 계곡]]과 [[푸아티에]], [[앙굴렘]], [[페리]], [[리모]], [[클레르몽]], [[부르주]] 등을 차례로 회복하였고, 대머리 [[카를 2세]]는 피핀 2세를 진압하려고 힘썼다.
 
[[859년]] 피핀 2세는 [[로베르 강철공]] 및 [[브리튼]]의 주교 [[솔로몬]] 등과 동맹을 맺었다.<ref>[http://gallica.bnf.fr/ark:/12148/bpt6k215043h/f78.image#ES Annales de Saint-Bertin , Pag 99]</ref> 다시 카를과의 전투를 시작했으나 작은 승리를 몇번 거두었다.
 
[[864년]] 무렵 피핀 2세가 [[바이킹 족]]에 가입해서 [[바이킹]]이 된 것으로 [[그리스도교]] 사회에 확산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예배 대신, [[바이킹 족]]의 하나로 살며 바이킹의 신을 숭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툴루즈]] 지역을 공격할 때 [[바이킹 족]]에 합류되었다. 그러나 피핀은 툴루즈 지역을 공략하던 중, [[카를 2세]]의 추격자에 의해 사로잡혔다. 그는 [[864년]] 황제 [[루트비히 2세 (이탈리아)|이탈리아인 루트비히]]의 명의의 [[파이스트레스의 칙령]]에 의해 면직되고, 피핀 2세는 곧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한등급 감하여 [[상 리스]] 감옥에 수감되었다. [[864년]] 피핀은 [[상 리스]] 감옥에서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