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시마 미치후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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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왜장 마다시(馬多時)로 알려진 인물이다. 다만 마다시란 인물에 관해서는 [[아와지 섬]]을 중심으로 활약한 해상세력 간 씨(菅氏)의 간 헤이에몬(菅平右衛門)의 자제 가운데 한 명인 간 마사카게(菅正陰)로 마타시로(又四郎)라는 통칭을 가진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간 마타시로 마사카게 또한 명량에서 죽었고 '마타시로'와 '마다시'의 일본어 독음도 서로 같다.<ref>[http://homepage2.nifty.com/H-Suga/kan11.html 아와지 간 수군의 역사_10장_간 헤이에몬의 자제]</ref>
 
== 사후 ==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섬기던 미치후사의 장남 미치노리(通則)가 죽어 차남 나가치카(長親)가 구루시마 가문을 이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섬기던 미치후사의 장남 [[구루시마 미치노리|미치노리]](通則)가 죽어 차남 [[구루시마 나가치카|미치노리]](長親)가 가문(来島氏)을 이었다. 당주를 이어받은 [[구루시마 나가치카]](来島長親)의 대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西軍)에 가담했으나 나가치카의 처백부(妻伯父)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연줄로 [[혼다 마사노리]](本多正信)를 통해 집안의 이름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고, 게이초 6년([[1601년]])에 [[분고 국]](豊後国)의 구스 군(玖珠郡)으로 영지가 옮겨지고, [[모리 번]](森藩)을 열었으며 이후 바다와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나가치카의 아들 [[구루시마 미치하루]](久留島通春) 부터는 성씨가 구루시마 씨(久留島氏)로 바뀌었다.
 
== 관련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