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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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자(字) = 운보(雲甫), 낙천(樂天)
|호 = 낙천(樂天)
|국적=[[조선]]
|시대 = [[조선]] 중기(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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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 조부 : [[방호의]](方好義) </br> 외조부 : [[정언각]](鄭彦慤)
|주요 참전 전투/전쟁= [[임진왜란]], [[정유재란]], [[노량해전]]
|기타 이력= 형조참의,증 [[형조]][[참의]]<br>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방덕룡'''(方德龍, 1561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 장군, 정치인이다. 본관은 [[온양 방씨|온양]](溫陽)., 자(字)는 운보(雲甫), 호(號)는 낙천(樂天)이다. 할아버지는 정2품 지[[돈녕부]]사 [[방호의]](方好義)이고,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방헌침(方獻忱)이다. 1588년([[조선 선조]] 21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낙안군수로 관직에 재직하던 중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부사(府使) 이영남(李英男), 만호(萬戶) 안여종(安汝棕)과 함께 절이도(折爾島)에서 복병(伏兵)을 하였다가 왜군을 협공하여 크게 이겼다. 이듬해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이 되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ref>『선조실록(宣祖實錄)』</ref>
 
== 생애 ==
방덕룡([[1561년]](명조[[명종]] 1616년)~1598년(선조 31[[경기도]] 팽성현의 북촌에서 아버지 방헌침(方獻忱))은과 어머니 [[조선해주 정씨]] 중기의아들로 충신이다태어났다. 방덕룡은 [[온양 방씨]] 22세손이며, 지[[돈녕부]]사,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한 [[방호의]](方好義)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방헌침(方獻忱)이고, 어머니는 [[부제학]],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한 [[해주 정씨]] 8세손 [[정언각]](鄭彦慤, 1498년∼1556년)의 셋째 딸이다.<ref>[http://www.hjjeong.org/bbs/board.php?bo_table=bgroup2_11_4 해주정씨 종친회 > 8세 정언각 고죽재공]</ref> 고모는 [[세종]](世祖)대왕의 셋째 아들 익대공신 덕원군(德源君:1449년-~1498년)의 손자 연창군(延昌君, 1509년~1566년 李鶴壽)의 부인이다.<ref>[http://www.onyangbang.co.kr/news/content.asp?id=796&board=4 방덕룡 정사기록]</ref>
 
방덕룡는 [[경기도]] 팽성현의 북촌에서 살았다.방덕룡의 부인은 [[진주 강씨]](晉州 姜氏) 박사공파 12세손 [[강응서]](姜應瑞)의 딸이다. 장인인 강응서(姜應瑞)는 생원(生員),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내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관 참찬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兼 經筵官 叅贊官)에 증직되었다.<ref>[http://kangssi.kr/cham/pan/panseo-1.htm 진주 강씨 인터넷 전자 족보]</ref>
 
[[1588년]]([[조선 선조]] 21년) 방덕룡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가 굳이 무장이 되고자 하였음은 그의 증조부인 [[방윤]](方輪)이 동북면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순직할 때 창(槍)을 내려주면서 앞으로 국난이 있을 때 나라를 지키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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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6월 28일부터 1597년 7월 6일까지 문천(文川) 군수를 지냈다.<ref>죽계일기(竹溪日記) 卷之四</ref>
 
[[1598년]](선조 31년)에 낙안군수(樂安郡守)로 있었는데 당시 통제사 [[이순신]]이 그가 용감하고 또 지략이 있다고 하여 선봉장으로 삼았다.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결사적으로 적진에 돌입하여 적을 무찔렀으나, [[이순신]]이 전사하였을 때는전사하자 “주장이 이미 죽었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하랴” 하고 적군에 뛰어 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니, 그의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조선 선조|선조]]가 그 절의를 가상하게 여겨 형조참의를[[형조]][[참의]]를 추증하고, 대대로 그 자손에게 벼슬을 주었다. 방덕룡의 아들인아들 방전(方倎, [[1583년]] ~ ?)은 [[광해군]] 8년([[1616년]]) 증광(增廣) 생원시와 진사시 양시에 동시 합격하였다.<ref>『만력44년병진3월증광사마방목(萬曆四十四年丙辰三月增廣司馬榜目)』</ref>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