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Hamemers (토론 | 기여)
Hamemers (토론 | 기여)
65번째 줄:
==== 정변과 투옥 ====
[[파일:Karel Rudolf.jpg|thumb|left|140px|샤를의 왕관이 귀족들에 의해 박탈되는 장면]]
[[922년]] 샤를 3세는 자신의 배다른 고모인 [[로틸드]]의 [[세실]][[수도원]]장 직을 박탈했다. 대머리 [[카를 2세 (서프랑크)|카를]]과 [[오툉의 리첼다]]의 딸이었던 로틸드는 우르수스 공작의 미망인이자 [[895년]] 마이네 백작 [[로저 드 마이네]]와 결혼했다가 과부가 되었다. 또한 그녀의 딸들 중 이름이 전하지 않는 딸은 후일 [[위그 르 그랑]]과 결혼했다 한다.
 
[[922년]] [[로렌]]에 침입한 [[독일의 왕]] [[하인리히 1세]]를 상대하여 겨우 이기고 화약을 체결한 뒤 돌아왔다. 그는 [[로타링기아]]의 군사와 병력에 주로 의존하였다. 샤를이 [[로트링겐]]의 업무와 고문관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네우스트리아]]의 귀족들을 소외시키자 [[920년]] 서프랑크의 귀족들은 샤를의 퇴위를 요구하기도 했다. 922년 [[네우스트리아]] 귀족들은 [[파리]]에서 반란을 일으켜, [[외드]]의 형제인 [[로베르 1세 (서프랑크)|로베르 1세]]를 왕으로 뽑았다. [[900년]]대 이후 그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랭스 대주교 풀크는 그해 [[7월 2일]]에 사망하였다. 샤를은 [[로트링겐]]으로 피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