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요시무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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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 요시무라'''(이달길촌, {{llang|ja|伊達吉村}}, [[1680년]] [[7월 23일]] ~ [[1752년]] [[2월 8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센다이 번]]의 5대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스케사부로({{lang|ja|助三郎}})이며, 초명은 무라후사({{lang|ja|村房}})이다. 관위는 종4위상, 좌근위 임시 중장, [[무쓰노쿠니|무쓰]]노카미이다.
 
[[엔포]] 8년, 2대 번주 [[다테 다다무네]]의 여덟 번째 아들인 [[다테 무네후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4대 번주 [[다테 쓰나무라]]의 맏아들 오기치요마루가 일찍 사망하면서 양자가 되었다. [[겐로쿠]] 16년([[1703년]]), 쓰나무라가 은거하면서 가문을 잇게 되었다. 선대 번주 쓰나무라가 시행한 개혁으로 인해, 요시무라의 재위기에 이르러 센다이 번은 극도의 재정적 궁핍을 겪게 되었고, 요시무라는 재정 재건을 위해 번정 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교호]] 12년([[1727년]])에 막부의 허가를 얻어 [[간에이쓰호]]를 [[이시노마키 시|이시노마키]]에서 주조하였고, 그것을 영내에서 유통시켜 이윤을 얻었다. 또 쌀 매입을 재편 강화해서, 농민으로부터 잉여 곡물을 강제적으로 공출시켰고, 그것을 [[에도]]로 운반시켜 이익을 증대해 번 재정을 윤택하게 했다. 이 때문에 18세기 초부터 중엽에 걸쳐 에도 시장에 돌던 쌀의 대부분이 센다이 번의 것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또 요시무라는 책, 그림, 와카 등 문학적 방면에 소질이 있었고, 번 내에 학문소를 설치하여 학예를 장려했다. 특히 와카에 조예가 깊어 교토의 귀족들과 친교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