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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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던 중 [[405년]] 아버지인 [[아신왕]](阿莘王)이 붕어하자 첫째 숙부 [[부여훈해]](扶餘訓解)가 임시 [[섭정]]을 맡았으나 막내 숙부 [[부여설례]](扶餘碟禮)가 [[부여훈해]](扶餘訓解)을 시해하고 후임 임시 [[섭정]]을 맡고 있었는데 [[해충 (백제)|해충]](解忠)이 [[부여설례]](扶餘碟禮)를 몰아내어 주살한 후 백제에 도착한 [[전지왕]]이 16세에 보위에 오르자 [[405년]]부터 [[408년]]까지 [[해충 (백제)|해충]](解忠)이 [[섭정]]을 맡았고 [[408년]]부터 [[420년]]까지 천정하였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이 죽자 학자 [[아직기]]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즉위했다는 기록이 있어 [[아직기]]가 전지왕이라는 학설도 존재한다.<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3580 네이버캐스트 - 왕인].<</ref>"
== 생애 ==
《[[삼국사기]]》 의 [[아신왕]], 전지왕 본기에 의하면 [[394년]]([[아신왕]] 3)에 [[태자]]에 책봉되었고, [[아신왕]]이 죽고 [[아신왕]]의 첫째동생 [[부여훈해]]가 [[섭정]]을 맡고 있었는데 [[백제]] 왕실에서 내분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본]]에서 귀국하는 도중에 전지왕은 신하 [[해충 (백제)|해충]](解忠)에게서 [[백제]]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을 알고 섬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 뒤 해씨 세력은 [[백제]]에서 [[섭정]] [[부여훈해]]를 시해하고 후임 [[섭정]]을 사칭하여 내분을 일으킨 [[부여설례]]([[아신왕]]의 막내아우)를 죽이면서 전지왕을 즉위시키고, 그 이후에 전지왕이 [[백제]]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