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아리스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번째 줄:
원래 스페인군의 사관이었던 아리스타는 이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의 혁명군에 참가했다. 그후 아리스타는 1836년 [[텍사스 혁명]]을 진압하는 동안 멕시코의 독재자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휘하에 있었다.
 
1846년 아리스타는 북부군의 임명되어, 멕시코령 텍사스에서 미군 부대를 축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경 분쟁의 결과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발발한 처참한 멕시코 미국 전쟁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아리스타는 [[팔로 알토 전투]]와 [[레사카 드 라 팔마]]의 전투]] 당시 멕시코군의 사령관이었다.
 
아리스타의 전략은 전투 연구자들에 의해 토론의 흔한 주제가 된다. 개인적으로 용감하지만, 아리스타는 한결같은 "republicano", 즉 멕시코 자유파벌의 멤버이며, 따라서 그가 맡는 보수적인 참모진들의 천적이었다. 팔로 알토와 레사카 드 라 팔마의 두 전투에서 아리스타는 그의 참모진들의 정치적 내분에 의해 힘을 쓰지 못했다.
12번째 줄:
[[1851년]] 아리스타는 대통령으로 호세 호아킨 데 에레라를 점거하여 국가에 안정된 재정을 확보하고자 했다. 아리스타 정권에 대한 보수파의 저항, 그리고 그 보수파에 의한 마지막 반란은 1853년에 그를 사퇴와 추방으로 이끌었다.
 
그는 [[185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사망했다. [[1880년]] 아리스타의 시신은 멕시코로 돌아 왔으며, 진보 계파들은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여겼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