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레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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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여러[[레사카 차례 패전을 경험한팔마 전투]]의 결과, 멕시코테일러 장군은 [[5월 18일]]에 [[리오그란데 강]]을 건넜다. 반면 6월초 [[마리아노 아리스타]] 장군은 북부군 병력 약 2,638명은638명의 지휘권을 프란시스코 메쟈에게 넘겨주었다.<ref name=Bauer>Bauer, K.J., 1974, The Mexican War, 1846-1848, New York:Macmillan, ISBN0803261071</ref>{{rp|82}} 메쟈는 그들을 데리고 남쪽으로몬테레이로 철수하였고배치시켜, [[재커리 테일러]] 장군이 이끄는 미국 군대를 다시 맞기 위해 재정비를 했다. 옛 요새의 도시 몬테레이 근처에서 페드로 데 암푸디아 장군은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로부터 살틸로 시(암푸디아가 방어선을 치고 있던 마을)까지 후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승리에 굶주린 군인이 끊임없는 패퇴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던 암푸디아 장군은 명령을 거절하고, 몬테레이에서 교전을 선택했다. 이 교전을 위해 멕시코시티에서 원군이 파병되었다. 원군은 1,000명의 아즈페이티아 대대, 1,060명의 시므온 라미레즈 대대와 포병대 한 부대,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주를 이루는 멕시코군 지원병들 산 패트리시오스(San Patricios, 또는 성 패트릭 대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미군과의 최초의 큰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