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가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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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무기와 새로운 전술 ==
아시가루는 후기 시대에 사무라이 군대의 중추를 조성했다. 아시가루에 대한 실제 변화는 1543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도입된 화기로부터 시작했다. 지역 다이묘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아시가루를 습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유미]](일본 활)에 비해 적은 훈련으로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새 무기로 무장시켰다. 전투가 더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자, 아시가루는 적 총격의 면전에서 대열을 지키도록 엄격히 훈련되었다.
 
새 다양하고 강력한 무기의 이점은 사무라이 전투에서의 결정적인 역할을 증명했다. 이는 1575년 [[종자도총|다네가시마]](일본 화승총)으로 무장한 아시가루를 배치했던 [[나가시노 전투]]에서 실현되었다. 이 아시가루들은 [[오다|오다 가문]]의 방어선을 향한 [[다케다]] 중기병의 거듭된 돌격을 좌절시키고 다케다 진영의 후방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전투 후, 군대에서 아시가루의 역할은 사무라이에게 강력한 보완책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이점은 1592년과 1597년, 조선인들과 나중엔 [[중국인]]들에게 맞선 두 번의 [[조선]] 침략에서 활용되었다. 비록 첫번째 침략에서 총기(화승총)과 활의 비율은 2대1 이었지만 두번째 침략에서는 총기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이유로 그 비율이 4대1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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