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무크타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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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무크타르의 저항운동과 이탈리아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크타르는 이탈리아군을 괴롭히고 있었고, 무솔리니는 [[루돌포 그라치아니]] 장군을 리비아 총독으로 파견한다. 그라치아니는 평화 회담을 열어 시간을 끌면서 이집트-리비아 국경에 철조망을 가설하여 외부로부터 무크타르를 차단하는 한편, [[베드윈족]]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이 조치로 이탈리아는 2가지 방법으로 리비아 저항군의 저항운동을 약화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하나는 식량 공급을 차단하여 그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많은 리비아인들이 무크타르의 저항군에 가담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모두 12만 5천명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이중에서이 중에서 2/3가 죽었다.
 
이런 동족들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무크타르는 조국과 동족들의 해방을 위해 저항운동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