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코르테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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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텍 문명 정복 ===
코르테스는 유카탄 반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탐험대장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를 두려워한 총독 벨라스케스가 이를 번복하자 [[1519년]] 병사 508명과 말 16필을 11척의 배에 나누어타고 독자적으로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베라크루스]]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부족들을 점령해나갔다. 말이나 대포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틀락스칼라인들은 한번의 전투 후 코르테스에게 항복하였다. 코르테스는 원주민을 통해 [[아스텍]] 왕국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코르테스는 아스텍 왕국에 들어갔으나 아스텍황제 몬테수마2세가 베라크루즈를 기습해 오히려 황제를 사로잡을 구실을 만들어주었고, 황제는 궁에 갇히고 포로신세로 변하게 된다. 그의 행동을 좋지않게본 쿠바총독 벨라스케스가 판필로 나르에바스에게 900명의 에스파냐인과 500명의 흑인노예를주어 코르테스를 토벌하라고 한다. 결국 수비대장 후안 데 에스칼란데가 전사하면서 그는 이일이 보통일이아니라고 판단, 그는 그의 부관이자 친구였던 알바라도에게 100명의 군대를 남겨주고 테노치티틀란을 떠난다. 알바라도는 신중한 인물이 아닌듯했다. 그는 우이칠포로치틀리 봄축제를 즐기는 아스텍귀족들이 반란을 모의한다고 판단, 군대를 이끌고와서 귀족 1만명을 학살했다. 코르테스일행이 승리를거두고 돌아왔을때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그래서 알바라도에게 좌초지종을 물었더니, 그가 대답을하자 그는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도시를 빠져나가려하지만 포위당한다. 그래서 황제로 하여금 설득하라고하지만, 황제는 흥분한 관중들의 돌과 화살을맞고 사망한다. [이 설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이게 6월 25일 슬픔의 밤이다. 코르테스는 일행을 데리고 6월 30일 탈출을 시도하지만, 아스텍인들의 공격으로 대부분 사망하고, 석궁과 대포, 철갑옷, 철검, 철투구, 아르퀘버스등의 무기들을 탈취당한다. 군마도 23마리만 남고만다. 동맹국 틀락스칼라까지 150마일의 지옥의 행군을 해야했다. 그들은 7월7일 오툼바에서 테노치티틀란-텍스코코-타쿠바 [아스텍 삼각동맹]군 4만을 보게된다. 모든 병사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입은상태였고, 석궁이나 아퀘버스도 없었다. 에스파냐인 400명과 1~2000명의 틀락스칼라인뿐이었다. 아스텍군은 심지어 탈취한 스페인무기 [물론, 아퀘버스나 석궁은 사용법을 모른다.]로 무장하고 있었다. 코르테스는 단단한 사각진형을짜고 에스파냐인 뒤에 틀락스칼라인들을 배치했다. 틀락스칼라인들은 크게 환영했는데, 그들은 슬픔의밤이후로 아스텍군을 크게 두려워했고, 에스파냐군과 전투를한적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무기의 강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병은 부관에게 맡긴뒤 자신은 23기의 대부분 부관출신으로 이루어진 기병대를 이끈다. 그는 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시우아코아틀[나우나틀어로 군사지휘관]을 눈여겨 보았다. 시우아코아틀은 코르테스에게 갈기갈기 찢겨 살해되고, 나머지 아스텍 부관들은 그의 기병대가 살해했다. 시우아코아틀이 죽은걸안 아스텍군들은 모두 달아나기 바뻤다. 코르테스는 이전투에서 2번이나 아스텍 돌팔매에 맞았으며, 슬픔의 밤때난 손가락상처가 악화되어 2개의 손가락을 쓸수없게되었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부상자들이었으며, 애초에 아스텍군은 포로를잡기위해 상대를 죽이지않아, 보통은 달려들어서 묶기바빠서 대부분 한번에 찔러죽이라는 코르테스의 말에따라 죽었다. 사상자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으나, 몇천명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코르테스와 부관들이 죽인 지휘관들은 몇안되는 나머지 아스텍 귀족들이므로, 아스텍의 피해는 매우컸다. 그이후 9월에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에 의해 옮겨진 [[천연두]]가 창궐하자 아스텍 인들이 죽어나갔고 심지어 황제마져황제마저 죽고 마지막황제 쿠아우테목이 즉위한다. 그는 몬테주마의 직계도 아니었고 몬테주마의 자식들을 죽여 많은귀족들의 반감을사게된다. 쿠아우테목은 틀라텔롤코에서 최후의 항전의지를 보이고 모든국경수비대를 모두 불러들이고, 테노치티틀란으로가는 길목을 모두 파괴하고 한개만 남긴다. 하지만 텍스코코호수를 관장하던 텍스코코가 코르테스에 항복하면서 호수의 소유권도 코르테스군이, 게다가 텍스코코인들도 아스텍에대한 반감때문에 코르테스에 군대를 지원하게되고, 결국 1521년 8월 13일 아스텍은 항복하고, 테노치티틀란은 점령당하게된다.
 
아스텍인을 포함해 그 어떤 원주민도 스페인인들을 신으로믿지 않았으며, 신으로 믿은 부족이 있더라도 금방 깨달은게 보통이었다. 에스파냐인들이 원주민들을 쉽게 이길수있었던것은 원주민들의 총에대한 공포심이 매우 강했으며, 말과 군견, 돼지도 보지못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