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Namobot (토론 | 기여)
봇: 인용 틀 변수 이름 수정
8번째 줄:
대저택에는 거의 한 사람 이상의 전문 음악가가 있었으며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왕자가 실내악 연주와 작곡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가를 임명하기도 하였다.<ref name="ep54"/> 16세기와 17세기에 합주 음악이 많이 나타나면서, 17세기 소나타와 푸가의 발전과 관련된 [[리체르카레]]나 [[칸초네]] 형식이 등장하였으며, 느리고 안정된 [[파반]]과 빠른 [[갈리아드]] 등 새로운 춤곡이 나왔다.<ref name="ep54"/>
 
17세기와 18세기 실내악은 독일의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이탈리아의 음악 아카데미, 영국의 음악 클럽이 등장하며 각각 발전하였다.<ref name="ep54"/> 18세기 실내악에서는 관악기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프랑스에서는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에]], [[바순]], [[하프시코드]] 등 다양한 악기를 조화시킨 음악을 처음으로 내놓았다.<ref name="ep54"/> 하이든은 처음으로 실내악단에서 하프시코드를 제외시켰으며, 야외 연주용 세레나데를 연주하기 위해 새로운 악기를 썼다.<ref name="ep56"/> 그 까닭은 야외 연주를 하기 위해 하프시코드를 옮기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었다.<ref name="ep56"/>
 
귀족의 저택에서는 정기적으로 음악의 밤이 열렸는데, 소편성의 음악가들이 가족과 손님을 위하여 연주하였다.<ref name="ep55">Wade-Matthews, 2004, p.55.</ref> 빈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직업적인 라주모프스키 4중주단을 창설하여 급여도 지불하였는데, [[베토벤]]도 이들을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해주었다.<ref name="ep55"/>
 
20세기에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낭만주의]] 시대의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대한 거부감으로 실내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ref name="ep56">Wade-Matthews, 2004, p.56.</ref> 실내악은 이제 [[피아노 3중주]], [[현악 4중주]], [[현악 5중주]] 등 과거의 실내악이 아니라, 새로운 소리와 독특한 악기를 조합한 소규모 집단으로 [[관악기]]와 [[현악기]]의 혼합 합주가 중시되었고, [[타악기]]나 [[성악]]이 더해질 때도 있었다.<ref name="ep56"/>
39번째 줄:
 
== 참고 자료 ==
* {{서적 인용 |성= Wade-Matthews|이름= Max |제목= 세계의 악기 백과 사전 |꺾쇠표= 예 |초판발행일자= 25 |초판발행년도초판연도= 2004 |초판발행월= 10 |출판사= 교학사 |출판위치= 서울 |id= 89-09-09735-3}}
 
[[분류:서양 고전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