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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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불교'''는 [[침류왕]](枕流王) 1년(384)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에서 [[백제]]로 들어옴으로써 최초로 전래되었다. [[침류왕]]이 이 외국 승려를 환영했고 궁중에 있게 한 것으로 보아 이미 [[백제]]에 그 이전부터 [[불교]]가 전해져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의 불교〔서설〕#불교의 전래|불교의 전래]]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백제(百濟)에는 침류왕(枕流王) 1년(384)에 인도승(印度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에서 들어왔다. 왕은 이 외국 승을 환영했고, 궁중에 있게 한 것으로 보아 백제에도 그 이전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f>
백제의 불교는 예술{{.cw}}외교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의 불교〔서설〕#삼국시대의 불교|삼국시대의 불교]]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백제의 불교는 예술·외교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ref> 성왕 때,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538년).<ref>{{서적 인용 |저자= 이은직 |기타= 정홍준 역 |제목= 조선명인전 |꺾쇠표= 예 |연도= 2005 |출판사= 일빛|id=ISBN 8956450889|쪽= 28 |인용문= 백제는... 538년에는 불교를 전파했다.}}</ref> 성왕은 [[긴메이 천황]](재위 539년 ~ 571년)에게 사신과 함께 불상 및 불경을 보냈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세계 종교사 입문 | 저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꺾쇠표 =예|연도= 2003 |출판사=청년사 |쪽= 229 |id=ISBN 8972783765 |인용문= 일본에 불교가 도입된 것은 538년 C.E(일설에는 552년 C.E.)이다. 당시의 일본 왕 긴메이(欽明) 천황이 백제의 성왕(聖王 또는 聖明王)이 사신과 함께 보내온 불상 및 불경을 받은 것이 그 시초였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ref> 그리고, 백제는 석가불금동상 1구, 번개(幡蓋) 약간, 경론(經論) 약간권을 딸려서 달솔 [[노리사치계]](怒唎思致契) 등을 일본에 파견(552년)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꺾쇠표 =예|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十九|卷第十九 欽明天皇]] |인용문=十三年...冬十月、百濟聖明王、更名聖王。遣西部姬氏達率怒唎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軀・幡蓋若干・經論若干卷。 (13년(552년) 겨울 10월, 백제의 성명왕(혹은 성왕이라고도 한다)이, 서부달솔 희씨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석가불금동상 1구와 깃발 약간, 경전 여러 권을 보냈다. }}</ref> 이 번개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서기]]》에 기록될 정도이므로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ref>{{서적 인용 | 저자 = 고유섭 |제목= 구수한 큰맛 | 꺾쇠표= 예 |출판사=다할미디어 |연도=2005 |쪽=160 |id = ISBN 8989988241 |인용문 = 원래 백제의 공예는 고도로 발달되었나니, 성왕 3년에 일본에 전한 번개(幡蓋)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 정사에 특히 그 기록이 실려 있는 것만 보더라도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겠고, ...}}</ref>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백제의 많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일본에 파견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 이은직 |기타= 정홍준 역 |제목= 조선명인전 |꺾쇠표= 예 |연도= 2005 |출판사= 일빛|id=ISBN 8956450889|쪽= 28 |인용문=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많은 학자와 기술자를 비롯하여 의사나 음악가까지 파견하였다. }}</ref> 577년(위덕왕 24년, 비다쓰 천황 6년)에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경론 몇 권, 대대적인 학자와 율사{{.cw}}선사{{.cw}}비구니{{.cw}}주금사 등 승려 집단, 불상 만드는 기술자, 사찰을 지을 목수들이 파견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꺾쇠표 =예|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二十|卷第二十 敏達天皇]] |인용문=六年...冬十一月庚午朔、百濟國王、付還使大別王等、獻經論若干卷、幷律師・禪師・比丘尼・呪禁師・造佛工・造寺工、六人。遂安置於難波大別王寺。 }}</ref>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1 | 저자= 최범서|꺾쇠표 =예|연도= 2006 |출판사=가람기획 |쪽=166 |id=ISBN 8984352411 |인용문= 그 후 위덕왕 24년에 백제왕이 경론 몇 권, 율사律師 · 선사禪師 · 비구니 · 주금사呪噤師 · 조불공造佛工 · 조사공造寺工 등 6명을 보내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 }}</ref> 그 뒤,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들까지 건너갔다.<ref>{{서적 인용 |저자= 최용범 |기타= |제목=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꺾쇠표= 예 |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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