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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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초창기 당시에는 보직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1984년]]까지는 선발로 등판하다가, [[1985년]] 26세이브와 전·후기 통합 우승, [[1986년]] 19세이브를 통해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나 [[1985년]], [[1986년]] 당시에는 선발에 가까운 170이닝, 140이닝을 휴식 없이 소화해 냈기 때문에, 혹사의 우려 또한 심했다.
[[1987년]]엔 [[1986년]] 보다 훨씬 적은 이닝(약 90이닝)을 소화해내면서, 최고의 방어율(2.41)을 기록한다.(전성기는 선발로 15승을 기록한 [[1982년]]에 가깝다.) 그러나, [[1988년]] 노쇠화 때문인지, 3점대 후반의 방어율과 7세이브를 기록한다. [[1989년]] 19세이브를 끝으로 마무리 보직을 [[김상엽 (
통산 기록은 56승 49패 100세이브 방어율 3.06이고, 100세이브 달성 당시에는 자신의 별명답게 '명예 소방수'가 되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전업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에 자신의 후임이었던 [[김상엽 (
==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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