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전국체육대회 축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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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체육회]]는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를 1922년 2월 11일부터 사흘간 경성중학 운동장에서 개최했다.<ref name="KOC90-1 66"/> 중학부 종목에는 [[경신학교]], [[계정학교]], [[광성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숭실중학]], [[중앙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7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청년부 종목에는 건강운동부, 반도구락부, 불교청년회, 숭인체육회, 오성동창회, 유심학우회, 전주완산구락부, 주작체육부, 진주청년회, 평양무오단, 해주학생회 등 11개 선수단이 참가했다.<ref name="KOC90-1 66"/> 입장료는 일반인 20전, 학생 20전으로 책정되어 대회가 진행되었고, [[배재고등보통학교]]는 1921년에 개최된 제1회 전조선소년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난동 사건으로 받은 징계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다.<ref name="KOC90-1 66"/> 중학부 종목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상대로 3:0으로 이기고 우승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평양무오단이 결승에서 불교청년회를 3: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ref name="KOC90-1 66"/>
 
대회 후 [[조선체육회]]는 추운 2월에 축구 경기를 하는 것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다음 대회부터 가을인 11월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ref name="KOC90-1 69"/> 대신 다음 해에 개최하게 되면 2회와 3회 대회 사이의 기간이 거의 2년에 가깝도록 길기 때문에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한 해인 1922년 11월 23일부터 사흘간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를 개최했다.<ref name="KOC90-1 69"/>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부터 개최지에서 50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서 참가하는 선수단에게 50원 이내의 여비를 보조하기 시작했고, 경기 규정에 심판의 판정이 번복될 수 없다는 사항이 명문화됐다.<ref name="KOC90-1 69"/> 중학부 종목에는 경신학교, 군산 영명, 동광, 대구 계성, 배재고등보통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선천 신성, 숭덕, 숭실중학, 청년학관, 평양 보성,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13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청년부 종목에는 건강구락부, 경성상공단, 경성임술단, 마산맹호단, 불교청년회, 수양구락부, 숭실대학, 숭인체육부, 용산청년회, 중앙체육부, 진주청년회, 평양무오단 등 12개 선수단이 참가했다.<ref name="KOC90-1 69"/> 중학부 종목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숭실중학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경기를 진행하여 2:1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불교청년회가 결승에서 건강구락부를 상대로 2:0으로 이기며 우승했다.<ref name="KOC90-1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