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코미엔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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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잉카 제국]]을 예로 들면, 그 제도는 노동의 형태로 공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잉카의 전통을 지속시켰다.
 
==쇠퇴==
엔코미엔다 제도는 1510년 이후로 논란의 대상이었고, 이미 엔코미엔다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엔코멘데로들은 봉건 시대와 같은 세습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스페인 왕은 봉급 및 규정에 따라 관리들에 의한 신대륙의 통치를 했으며, 이 제도의 철회에 착수하게 되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라스 카사스]]와 [[도미니코회]]를 비롯한 스페인 수도사 지식인들은 제도 도입 이후 그 참상으로 인해 제도 철폐와 원주민 보호를 계속 호소했다. 그들은 엔코미엔다 제도를 비난하고, 일부 노예 해방에 대한 칙령이 있은 후 결국 1542년 인디아스 신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에 의하여 엔코미엔다 제는 공식적으로 철폐되어 노예화를 금지했을 뿐 아니라, 이미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도 해방시키도록 명령했다.
 
엔코멘데로의 몰락은 지역에 따라 훨씬 나중에 까지 유지한 지역도 있다. 사실, 엔코미엔다는 18세기 후반까지 남아 있었다. 자원이 부족한 [[유카탄 반도]]에서는 법적으로 특례를 인정했고, 18세기 말까지 엔코미엔다는 남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