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살루스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5번째 줄:
|}
 
카이사르군은 숫자가 폼페이우스군에 비해 월등히 적었으나 질적으로는 우수했다. 또한 폼페이우스에게는 집정관 경험자인 메텔루스 스키피오,아프라니우스,티투스 라비에누스,에노발부스와 같은 뛰어난 참모진이 있었다. 반면 카이사르의 참모진은 매우 부실했으나 백인대장과 같은 중견급 지휘관은 월등히 우수했다.
폼페이우스는 기병 7,000을 모두 좌익 맨끝에 배치했고 그 지휘를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티투스 라비에누스]]에게 맡겼고<ref>이는 폼페이우스가 라비에누스를 매우 신뢰했음을 보여준다.</ref> 보병은 맨 오른쪽부터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ref>기원전 60년도 집정관, 세르토리우스 전쟁 당시부터 폼페이우스를 따른 심복이다.</ref>가 이끄는 [[히스파니아]] 용병, 중앙에는 메텔루스 스키피오<ref>기원전 52년도 집정관으로 폼페이우스의 장인이다.</ref>가 이끄는 시리아 군단을 포진시켰고, 좌익에는 자신의 옛부하를 배치하여 아헤노바르부스<ref>기원전 54년도 집정관, 카이사르의 숙적이자 카토의 동료이다.</ref>가 지휘하게 했다. 폼페이우스 자신은 기병 우측에 포진했다. 적보다 우수한 기병의 숫자를 이용해서 적의 배후로 침입해 들어가는 전통적 "포위섬멸전" 진영을 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