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환 (189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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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3-11-25}}
김봉환은 북경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접촉, 공산주의 사상에 접하게 되었다. 그는 승려이자 무정부주의자인 [[김성숙 (
김봉환은 일본 제국주의를 공박하는 글을 종종 발표했다. 그리고 강경애라는 여류문인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1929년 겨울, 하얼빈으로 갔다가 일본 영사관원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만주국에 파견된 일본 영사관 경찰서 경부 송도(松島)는 해림에 있는 동거녀 강경애를 꾀어내 하얼빈 경사관 감옥에 감금된 김봉환과 만나게 됐다. 김봉환은 일부 자료를 넘겨준 뒤 즉시 석방되어 애인과 함께 해림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6, 7년형이 선고되었다가 갑자기 일본경찰의 도움으로 풀려난 김봉환은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됐다. 또한 그가 [[한족총연합회]]를 장악하려고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한 것 때문에 시선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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