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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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5-07-11}}
[[유은]]의 뒤를 계승한 동생 유엄은 917년 황제을황제를 칭하고 완전히 독립했다. 국호는 처음엔 대월(大越)이라고 했으나, [[918년]] 전한,후한을 건국한 유씨(劉氏)와 같은 성씨라고 하면서 한(漢)이라고 고쳤다. 남한의 이름은 다른 정권과 구별하기 위해 후대의 역사가가 명명한 것이다.
 
남한의 정치는 전란의 시대에서 압도적으로 군인주도의 정치가 이루어졌던 오대십국 시대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문관이 주도하는 정치가 이루어졌다. 지방관은 전부 문관이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나라 시대 중앙에서 권력다툼에서 패한 관료들의 좌천지역으로 선택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그대로 이곳에 눌러앉아 정착한 이들도 많아, 이런 사람들이 남한세력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