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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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헨리 7세는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은둔지로 몰래 떠나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게 했다”고 한다. 검소하다고 소문난 헨리7세 였지만 그녀를 위해 화려한 장례식을 열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레이디 채플에 묻혔다.
 
헨리 7세는 나중에 나폴리 왕의 미망인인 조안나, 카스티아의 여왕 조안나[[후아나 1세]], 사보이의 공작 미망인 마가렛 등과 재혼을 생각했지만 1509년 홀로 사망했다. 당시의 세금 징수 기록 등을 보면, 엘리자베스의 사망 이후 헨리 7세의 인색함과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인한 악명은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매장되었다. 엘리자베스의 무덤은 19세기에 발굴작업을 거쳤는데, 납으로 된 관을 덮었던 나무 상자를 후손인 제임스 6세를 묻을 장소를 만드느라 없애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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