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치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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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apanese Crest Oouchi Hisi.svg|thumb|180px|오우치 씨의 가문(家紋)]]
'''오우치 씨'''(大内氏, {{ja-y|大内氏|おおうちし}})는 [[일본]]의 성씨 중 하나이다. 본성은 다타라 씨(多々良氏), [[카바네가바네]]는 '''코니키시고니키시'''<ref>코니키시고니키시(王,コニキシ): 백제어로 왕을 뜻하는 건길지의 일본어적 변형</ref>이다. 중세 일본의 대영주이며 [[전국 시대]] 후기에 [[모리 모토나리|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 등에게 멸망 후에도 방계 후손들이 근세 일본 막부의 소영주 귀족 집안으로 살아남았다. [[백제]] 왕실의 후손을 자처하는 씨족이다.
 
[[스오 국]]의 실무 지방 관료에서 출세하여 [[슈고 다이묘]]로서 [[센고쿠 다이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큰 세력을 유지했고, 한반도와의 무역 및 교류를 통해 [[난보쿠초 시대|남북조 시대]] 및 [[센고쿠 시대|전국 시대]]의 상당 기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오 국]], [[나가토 국]], [[이와미 국]], [[부젠 국]], [[지쿠젠 국]]의 [[슈고]]직에 보임되는 등 전성기에는 6개 [[구니]](=영지)를 영유하였다.
 
== 역사 ==
=== 가문 유래 ===
일본인들은 소위 겐페이토오키츠겐페이토키쓰(源平藤橘, 일본 4대 대성인 [[미나모토겐지 (우지)|겐지]]·[[다이라 씨헤이시]]·[[후지와라 씨]]·[[다치바나 씨 (우지)|다치바나 씨]] 후손의 총칭) 또는 그 외의 중앙 귀족의 후손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우치 씨는 [[백제]] [[백제 성왕|성명왕(聖明王)]] 혹은 [[백제 위덕왕|위덕왕(威德王)]]<ref name="toyota1">[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토요타씨도요타 씨(豊田家) 족보(系譜) 중] '第十二代 聖王、第十三代 威徳王(第十四代 惠王、第十五代 法王、第十六代 辰爾王、第十七代 武王、第十八代 義慈王、第十九代 豊璋王、第廿代 禅廣)'''第十四代 琳聖太子義照'''' 부분 발췌</ref>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임성태자(琳聖太子)]]를 시조로 주장한다<ref>한국에는 관련 기록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오우치 씨의 종손 쪽은 백제 성왕을, 오우치의 일족인 토요타 씨는 백제 위덕왕을 임성태자의 아버지로 주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는 백제 성왕을 다타라씨의 시조로 기술 중이다.</ref>.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으로 건너간 임성태자가 [[스오 국|스오(周防) 국]]의 다타라하마(多々良浜) 바닷가에 도착하였으므로 스스로의 성을 '''다타라(多多良)'''라 하였다가 훗날 오우치(大內) 마을에 거주하게 되면서 '''오우치 씨'''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성태자의 기록은 통일 신라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사료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오우치 씨가 임성태자의 후예임을 자처한 최고 문헌도 14세기 이후의 것이다<ref>조선 왕조와 무역등으로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던 오우치 씨는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임성태자의 기록이나 족보를 알려달라 요청했으나 조선 조정에서도 기록이 없어 대답을 못해줬다고 한다. 역사상 중요성이 없어 누락된 왕자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기록이 없다는 것일 뿐 가공의 인물이란 근거도 역시 없다.</ref>. 대대로 [[스오 국]]에서 스오노곤노스케(周防權介)를 세습했던 재청관인 집안이라는 것 외에는 확실한 근본을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