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2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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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귀족들은 볼야르(боляр) 혹은 볼야린(болярин)라고 불렸고, 대귀족인 벨리키(велики; Great)와 중소귀족인 말리(мали; Minor)로 구분되었다. 데스포트와 세바스토크라토르와 같은 대귀족들은 황제와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고, 대귀족들은 중앙과 지방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다.<ref name="주석10">森安、今井『ブルガリア 風土と歴史』、142頁</ref> 귀족들의 의회에는 대귀족과 총대주교를 포함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전쟁 선포, 동맹 체결, 평화 조약과 같은 내외적인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다. 최종 결정권은 황제에게 있었다. 때때로 이단에 대한 비난 논의를 위해 성직자도 귀족도 아닌 일반민들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일반민들의 유일한 권리는 귀족들에 의해 결정된 사안에 대한 동의뿐이었다.<ref>Синодник царя Борила, с.90</ref>
 
불가리아 제국의 주요한 행정 단위는 호라(хора)였으며, 호라는 더 작은 행정 단위인 카테파니카(카테파니콘)로 나뉘어졌다나뉘었다. 이반 아센 2세 시대의 호라는 다음과 같은 12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ref name="주석10" />
 
* [[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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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불가리아 제국은 봉건 제도 위에 구축된 제국이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때부터 프로노이아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작된 봉건화는 중앙 권력의 약화와 함께 촉진되었다. 대 봉건 영주 계급이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여 큰 세력을 누렸고, 쿠만족 출신의 귀족 시슈만은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에게 비딘의 데스포트 직위를 받아 북서부 불가리아 지역에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많은 대귀족들 뿐만 아니라 토지와 재산을 기부받은 교회와 수도원까지 대토지를 소유하였다.
 
중세 불가리아 사회는 봉건 세력과 농민을 비롯한 종속민으로 분화하였다. 중간 계급으로는 도시의 상인과 장인, 하위 성직자와 수도사, 관료와 병사들이 자리하였으며, 약간의 노예도 존재하였다.<ref>ディミトロフ、イスーソフ、ショポフ『ブルガリア 1』、116頁</ref> 봉건 세력은 황제와 귀족 같은 세속 권력자와 고위 성직자와 같은 교회 귀족으로 나뉘어졌고나뉘었고, 하위 계급 중에서 봉건 세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ref>森安、今井『ブルガリア 風土と歴史』、141頁</ref> 불가리아의 토지 소유 형태는 황제령, 봉건영주령, 교회령, 수도원령으로 4분되었다. 황제령과 봉건제후령은 일정한 범위에 영지가 모여 있었으나 교회령과 수도원령은 하나의 사원이 소유한 토지는 국가 내에 분산되어 있었고, 지배 지역에는 주택, 경작지, 수차 등의 시설이 포함되어 있었다.<ref name="주석12">森安、今井『ブルガリア 風土と歴史』、140頁</ref> 당시 광범위한 토지를 소유한 사원은 힐란다르 수도원, 릴라 수도원, 바흐코보 수도원 등이 있었다.<ref name="주석12" /> 봉건 영주는 도시에도 개입하여 도시의 상인이나 장인도 봉건 영주의 압박을 받았다.<ref name="주석17">金原「中世のバルカン」『バルカン史』、92頁</ref>
 
봉건 세력의 대토지 소유와 함께 농민들의 농노화도 진행되었다. 농노들은 봉건 영지 내에서 경작 토지의 상속, 매매, 증여는 가능하였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봉건 세력이 농민에 부과한 세금은 부역과 공납 이외에도 시대가 진행되면서 화폐의 납부가 추가되었다.<ref>ディミトロフ、イスーソフ、ショポフ『ブルガリア 1』、117頁</ref> 농민은 곡물세, 가축세, 교회세, 가옥세 등의 정규세를 비롯하여 삼림, 연못, 제분소 비용에 따른 많은 비정규적인 과중한 세금의 부담을 지고 있었다.<ref name="주석13">이정희, 동유럽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년, p.139.</ref> 14세기에 이르러 민중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발칸 산맥 이북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사회적 불안의 증가로 인해 이단이 횡행하였고, 수도사가 되는 사람도 증가하였다.<ref>ディミトロフ、イスーソフ、ショポフ『ブルガリア 1』、108-109頁</ref> 또한 토지와 재산을 잃은 민중들은 비적이 되기도 하였고, 이들은 봉건 세력의 영지를 습격하기도 하였다.<ref name="주석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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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commonscat|Second Bulgarian Em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