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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국기그림|대한제국}} [[대훈위 금척대수장]]<br>{{국기그림|대한제국}} [[대훈위 이화대수장]]<br>{{국기그림|일본 제국}} 대훈위 국화대수장(大勲位菊花大綬章)
}}
'''이완용'''(李完用, [[1858년]] [[7월 17일]]([[음력 6월 7일]]) ~ [[1926년]] 양력 [[2월 12일]])은 [[대한제국]]의 외교관, 정치가이자 관료이다. 일제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에는 [[후작]]에 올랐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가운데 한 사람이다사람으로 [[매국노]]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부의장, [[조선사 편수회]] 고문 등을 지냈다. 본관은 [[우봉 이씨|우봉]](牛峰)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다.
 
문과 급제 후 [[수구당|수구파]]로서 청나라 [[양무 운동]] 모델의 근대화를 추구했고, 신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주미공사를 역임하는 등, 대한제국 내의 미국 전문가로서 내각의 실세가 돼 대미협상을 전담했지만, 정작 미국이 제 잇속만 챙기고 대한제국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일시적으로 실각당하기도 했다. 왕정을 고수하고 국제 사회에서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