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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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국교화가 비불교도 및 소수종족의 심한 반발을 사자, 우 누는 제4차 헌법 개정안에 모든 종교의 자유화를 선언해 버리는데 이제는 불교 승려들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반 회교 폭동이 발생했다. 나아가 1961년 3월 1일 소수종족에 대한 자치권을 의회에서 논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불교 국교화를 무색케 할 뿐만 아니라 국토의 분할을 용납 할 수 없다는 네윈을 비롯한 군부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마침내 다음날 3월 2일 쿠데타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 결과 버마민주공화국은 붕괴되었다.
 
=== 군사 정권 (1962 - 현재2010) ===
1983년, [[아웅 산 테러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공작원들이 한국 대통령및 각료들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장소였던 아웅 산의 묘소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국인]]각료와 미얀마인 다수가 살상된 사건으로, 사건 당시에 한국(남한)측은 버마가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당국이 연관된 것으로 오해하였으나, 사건을 조사한 미얀마 정부가 [[북한]] 외교관을 추방하고 국교를 단절함으로써 오해는 해소되었다. 아웅 산은 버마(미얀마) 독립의 영웅으로 대단한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미얀마에서는 북한을 대대적으로 규탄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기도 하였다. 후일 네윈 장군은 한국(남한)에 답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