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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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지역은 [[선비족|선비]],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족|여진]], [[몽골제국|몽골]] 등의 지배를 거치며 천 년 넘게 중국의 영향권 밖에 있었다. [[명나라|명]]대에 들어서서 한족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17세기에 들어서 [[만주족]]은 중국을 접수하기 전에 현재의 [[선양 시]]에 수도를 정하고, 1644년에 [[청나라]]를 세웠다. [[베이징]]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선양을 [[봉천부]]라고 칭했다.
 
[[17세기]] 후반에 청 정부는 [[산둥 성]]의 이민자들 모집하여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에 이주하도록 하였다. 현재 랴오닝성의 주민들의 선조는 대부분 17세기에 이 곳으로 이주한 정착민들이다. 이때 이후 한동안 둥베이 지역으로의 한족 이주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둥베이 지역은 세명의 장군이 통치하였는데, 랴오닝 지역은 성경({{zh|t=盛京}})장군이 지배하였다.
 
[[1860년]] 청 정부는 만주를 한족들에게 열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한족은 이 지역의 주요 민족그룹이 되었다. 20세기 들어와 봉천({{zh|t=奉天}})성이 현재의 랴오닝성에 세워졌다. [[러일전쟁]] 동안 주요 전투의 다수가 랴오닝 지역에서 행해졌다. 20세기 전반의 군벌 할거기간동안은 봉천 군벌 [[장쭤린]]({{zh|t=張作林}})과 그의 아들 [[장쉐량]]({{zh|t=張學良}})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1931년 일제가 [[류탸오거우 사건]]을 일으켜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만주국]] 괴뢰정부를 세워 만주를 지배하게 된다. 일제의 패망 이후 [[국공내전]] 동안의 첫 번째 대전투가 랴오닝 일대에서 벌어진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1949년에[[1949년]]에 랴오닝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에 랴오둥 성, 랴오시 성과 함께 선양, 뤼다, 안산, 푸순, 번스 5개의 직할시가 있었다. 1954년에[[1954년]]에 이들이 합쳐지면서 랴오닝성을 만들었고 이듬해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러허]]({{zh|t=熱河}}) 성이 합쳐지게 된다. 문화대혁명 시기 동안 랴오닝 성은 네이멍구 자치구의 일부를 편입하기도 하였지만 후에 복구되었다.<ref>{{서적 인용|저자=신형식|제목=한국사 입문
|꺾쇠표= 예|연도=2005|출판사=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ISBN=9788973006045}}</ref><ref>{{서적 인용|저자=김성호, 김상한|제목=한중일 국가기원과 그 역사|꺾쇠표= 예|연도=2008|출판사=맑은소리|ISBN=978898050221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