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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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도덕경을 상하로 나눈 사람은 전한 말기의 학자 유향이다. 완결편 도덕경 주석서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하상공'(혹은 '하상장인')이 지은 [[하상공장구]]가 있다. 후한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상공장구는 당나라 시기까지 가장 유행한 판본으로 양생론적 성향이 강해 초기에는 도교도들에 의해 많이 읽혔으나 이후 당나라 시대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ref>이석명 역,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2005). 소명출판. ISBN 89-5626-180-6</ref>
 
왕필은 18세이던 243년에 [[노자왕필주|노자도덕경주]]를 완성하였고, 이후 그의 저서는 위나라의 재상 [[하안]]에 의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그의 구석서는 하상공장구에 비해 덜 읽혔으나 송나라때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주요한 판본으로 여겨지게 됬으며됐으며, 이 지위는 명,청대에 더욱 확고해져서 백서본 출토 이전까지 무려 천년 이상 동서양 도덕경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ref>임채우 역, ''왕필의 노자''(1998). 예문서원.</ref> 그러나 그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을 유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았기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백서본과 왕필본의 다른점은 다음과 같다.
# 백서본은 장절구분이 거의 없이 이어 적혀있었으나, 왕필본은 장절구분이 잘 되어있다.<ref>도덕경 체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 현종대인 742년이다.</ref>
# 백서본은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놓이나, 왕필본은 도경이 덕경보다 앞에 놓인다. 다시 말하면, 백서본은 덕도경이라고 불려질 수 있고, 왕필본은 우리가 익히 들언대로 도덕경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