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애국청년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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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민관 폭파 의거 3인.JPG|섬네일|오른쪽|[[1945년]] [[부민관]] 폭파 의거 직전, 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
'''대한애국청년당'''은 [[1945년]] [[5월 5일]]에 [[종로구|서울 종로구 관수동]] [[유만수 (
|제목 = 훈장없는 3独立闘士(독립투사) 徴用(징용)갔다脫出(탈출)…一生(일생)을 抗日(항일)에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0081400329208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0-08-14&officeId=00032&pageNo=8&printNo=7649&publishType=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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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대한애국청년당은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유만수를 의장으로 선출한 뒤 [[1945년]] [[7월]]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 주최로 일본, 조선, 만주, 중국 등의 친일파들이 참가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신문을 통해 알게되어 친일 어용대회를 분쇄하기로 결의하였다. 특히 의장인 [[유만수 (
조선 총독, 조선군 사령관, 왕자오밍의 괴뢰중국 대표 정위안간, 만주국 대표 탕춘톈, 일본 대표 다카야마 도라오 등이 연사로 참가해 미국·영국을 규탄하는 일종의 선전극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어 저녁 9시 무렵 박춘금이 단상에 오를 차례가 되자, 유만수는 와 조문기 등은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인 뒤 연단, 계단 옆과 복도, 화장실에 장치한 폭탄이 폭발함으로써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의거로 대회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곧바로 [[부민관]]에서 나온 [[강윤국]], [[유만수 (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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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유만수 (
* [[강윤국]]
* [[조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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